유가 급등락 시 정제마진 악화 가능성 높아

석유수출국기구(OPEC) 연차총회를 하루 앞둔 가운데 회원국들이 감산에 합의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 참석한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 / 사진=뉴스1

 

국내 정유 업체들이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연차총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년 원유 가격 향방이 이들 손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유가가 유지되거나 점진적으로 상승한다면 국내 정유 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고 유가가 급등 또는 급락하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디어인 블룸버그는 OPEC 좌장 격인 사우디아라비아 의지에 따라 감산 합의는 이루지 못할 것으로 3일 보도 했다. 미국 셰일가스로 촉발된 원유 주도권 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와 유럽 원유 시장에서도 싸움을 벌이고 있어 감산 합의 보다는 더 버틴다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다른 OPEC 회원국 불만으로 극적인 감산 합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OPEC 산유국들은 원유 수출에 재정 의존도가 높다. 이들은 이미 불만 가득한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손 해보면서 팔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여타 OPEC 회원국들은 버틸 힘이 바닥에 다다랐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OPEC 회의에서 산유량을 하루 5% 즉 150만배럴 줄이자는 계획을 제안할 예정이다.

OPEC회의에서 회원국들이 감산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유가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글로벌 원유 시장은 지난해 OPEC 회의 이후 유가 급락을 경험했다. OPEC 감산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가 배럴당 70달러대에서 60달러선으로 8.6% 떨어졌다. 이후 배럴당 40달러대로 더 떨어지면서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정유 업체들에겐 유가 급락은 반갑지 않다. 일반적으로 정유사는 원료인 원유를 전월에 사고 제품은 그 다음 달에 판다. 유가 급락 상황에서는 원유를 비싸게 사고 제품을 싸게 팔아야 하므로 수익성이 떨어진다. 정유업체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석유 제품 가격에서 운영 비용과 원자재 비용을 빼고 남은 이익)이 축소되는 것이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유가 급락으로 인해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원료인 원유가 가파르게 하락하자 정제마진이 떨어졌다. 매출 70% 가량이 석유 사업에서 나오는 탓에 타격이 컸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 65조8756억원과 영업적자 2241억원을 기록했다. 연간 적자는 37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유업계는 유가가 변동폭을 키우는 것보다 저유가가 유지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고 있다. 정유업계는 이미 저유가 상황에 대비해 원료 수급처 다변화, 고도화 설비 증설 등 생산 효율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설비 개조를 통해 36%였던 고도화율을 39.1%로 끌어올렸다. 에쓰오일은 5조원을 들여 에쓰오일은 잔사유 고도화 설비(Residue Upgrading Complex·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복합단지(Olefin Downstream Complex·ODC)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도화 설비는 저가 원료를 사용할 수 있어 수익성 개선에 도움 된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정유업체와 유가 관계가 많이 변화 됐다. 국내 정유업체들은 저유가 상황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다”며 “단기적 유가 급등·락은 국내 정유 업체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지만 현상이 유지되거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점진적인 유가 상승은 국내 정유 업체들에 호재가 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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