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치른 공무원들 불만에 “국회가 제 역할 충실할 뿐” 항변도

“세종시에서 국회까지 2∼3시간을 걸려 올라와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국정감사 질의에 답변하는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였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8일 국정감사가 끝나자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이 같이 토로했다. 그는 이번 국감을 위해 국감 전 부터 의원실을 찾아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 바빴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3번 국회를 찾아 하루 종일 국감장에 앉아있었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어김없이 ‘부실’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불량 국감’, ‘낭비 국감’이라는 혹평도 이어졌다. 이 같은 비판은 “국회가 문제”라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매일 싸우기만 하는 국회의 권한이 지나치게 세졌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국감 당사자였던 국회 관계자들은 정반대의 말을 한다.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행정부를 견제하기에 힘이 딸린다는 목소리다.

◇ 공무원 “국회 권한 막강해졌는데…비효율에 국정 발목까지”

국정감사가 끝나자 ‘국회로 인한 업무 비효율성이 극에 달했다’는 목소리가 공무원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주요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까지 겹치면서 세종과 국회를 오가는 이들은 불만 투성이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1~2개월 전부터 자료를 생산해야 하는 일선 부서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적인 업무조차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한다.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날인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정감사장 앞에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들의 불만은 국회를 향했다. 국감이 정부의 업무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전문성 낮은 국회 관계자들이 과도한 자료를 요청해놓고 국감장에선 ‘일회성’ ‘이벤트성’ 짙은 이슈만 부각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매년 국감 때마다 평균 3만9000여건에 달하는 자류가 제출되면서 인쇄비만 42억원 가량이 든다고 한다.

공무원들은 ‘국회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극단적인 인식까지도 내비쳤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정책을 발표하고도 국회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회의 권한이 막강해질수록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의 혼란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 국회 “정부 자료 의존할 수 밖에…견제·감시하기엔 권한 부족”

국회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국감으로 인한 업무 부담은 정부 역할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정부 부처 공무원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가 견제·감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막강한 정부 권한을 누가 견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삼권분립의 정신에 비춰봤을 때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견제하기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보좌관들은 자료제출 문제에 대해선 오히려 더욱 불만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수사권이나 조사권이 없는 국회의 한계 상 정부의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정부가 형식적인 자료만 제출하고 주요한 내용은 감추기 일쑤라고 지적한다.

국회에서 요청한 자료 대부분이 정부 부처의 1차 감독을 거친 후 제출되기 때문에 핵심 문제를 찾기 어렵다는 항변이다. 실제로 이마트의 차명주식 보유와 관련한 자료제출 문제로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는 세 차례나 정회됐지만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들은 오히려 정부의 일방적인 행태를 문제삼았다. 국감이나 예·결산 심사에서 국회가 요구한 시정조치를 사실상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가 2013회계연도 시정요구사항 이행 결과를 분석한 결과 5건 가운데 1건은 아예 이행하지 않고, 이행한 것도 꼼꼼히 들여다보면 말 뿐인 경우가 적잖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법정부담금 요율을 인하하라’는 국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는 국회의 시정요구에 반해 부사관 인력을 지나치게 많이 운영하면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인건비 부족을 초래하고 있었다.

◇ 법 위의 시행령…“꼼수 입법 누가 막나”

정부의 일방적인 행보는 ‘법 위의 시행령’이라는 말까지 낳았다. 국회가 법안을 처리해주지 않자 시행령을 고쳐 꼼수 입법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회 법제실이 지난해 발간한 ‘행정입법 분석 평가 사례’에 따르면 2011~2013년 약 1800건의 행정입법(시행령 및 시행규칙) 중 모법에 어긋난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61건에 이른다.

‘학교 앞 호텔법’으로 알려진 관광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교육부는 장관 훈령으로 관광호텔업에 관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규정을 제정해 길을 열어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회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을 개정해 올해 6월까지 피해보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바꿨지만 주부부처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보상 신청을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일반 해고 요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정하겠다고 나선 점도 해고 요건을 엄격히 한 근로기준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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