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포조선 4개, 한화오션 7개 , 삼성중공업 1개 계약 인도일 변경 공시
조선업계 "현재까지 인도 지연 문제 불거진 바 없어"
일각선 "이미 납기 지연 문제 현실화됐다" 우려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지난 1년간 국내 조선 3사가 선주 측과 계약 변경을 통해 선박 인도일을 뒤로 미루는 사례가 10건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고질적인 인력난 영향으로 조선소들이 납기 일을 제때 맞추지 못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일감은 늘었지만 임금은 올리기 어려운 구조 탓에 선박 건조 속도를 높이기 쉽지 않다”고 했다.

16일 시사저널e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국내 조선 3사는 총 11건의 계약에 대해 선사과 협의 끝에 선박 인도일 일정을 연기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은 4개 계약, 한화오션 7개 계약, 삼성중공업은 1개 계약에 대해 인도일을 뒤로 미뤘다.

조선업계가 기술력과 더불어 세계 최고로 인정받던 납기일 준수에 따른 신뢰에 타격을 입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계약을 통해 인도일을 조정하는 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업계에선 인력난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늘어난 수주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2027년까지 약 4만3000명 인력 충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조선업계가 3년 치가 넘는 일감은 받았지만 정작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탓이다. 공정 지연으로 선주와 계약 당시 정한 납기 일정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조선업계가 계약 변경을 통해 납기일을 뒤로 미루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협력사는 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철판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용접을 비롯해 많은 인력이 필요한 핵심 공정인 블록 제작 단계에서의 납품 지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소들이 인력 부족으로 생산시스템 안정화를 이루지 못해 현재는 중국에서 일부 블록을 받아오는 상황”이라며 “문제는 중국도 가까운 시일 내 자국 생산 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를 수 있어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조선 3사는 인도일 변경 공시는 “조선소의 인력난 문제만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가장 많은 기재정정 공시를 낸 한화오션 측은 “공시마다 인도일 변경 사유가 다르기 때문에 인력난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면서 “선주사의 요청이나 설계·장비의 변경 등 사유는 다양하다”고 했다. 이어 “현재까지 인도 지연 문제가 불거져 지체배상금을 물었다는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도크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모습.  /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도크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모습. / 사진=HD현대

조선 3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인도 지연 문제는 이미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홍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해운 운임이 급상승한 데 따라 선주사도 인도 일정을 미루기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됐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시황이 좋은 LNG 운반선마저도 인도 일정이 뒤로 밀리고 있다”면서 “그나마 컨테이너 시황이 좋지 못해 선주사와 인도일 변경 협상이 수월했는데, 홍해 사태로 운임이 뛰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외국인 고용 등 자구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조선업의 이중구조에 따른 처우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고된 노동이 필요한 업종이지만 하청 업체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중견 조선사의 경우 2~3년 전부터 납기 지연 문제가 본격화됐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또한 E-7 비자(숙련기능인력)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조선소 자체 교육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되면서 미숙련 인력이 용접봉을 잡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력난 극복을 위해 국내 3사를 중심으로 해외 생산기지 구축이 본격적으로 검토 대상에 오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11월 사우디 아람코와 현지 조선소를 합작, 시험 가동 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현지 조선소 인근에 선박엔진 공장을 추가로 조성하고 있다.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인수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화오션은 잠수함 사업 수주 등을 위한 북미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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