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CVC 협의체 설립 이후 스타트업 잇단 투자 나서
굵직한 M&A 대비 리스크 적어, 대학생과 협업도 관심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의 ‘돌다리 경영’이 최근 스타트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올해 정 회장은 비전 2030 성과를 내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그룹은 전방위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며 스타트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스타트업 투자에도 드러나는 가운데 현대백화점이 잇단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혁신에 필요한 기술력과 아이디어, 서비스 등을 외부와 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개방형 혁신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투자한 주요 스타트업. / 표=김은실 디자이너
현대백화점그룹이 투자한 주요 스타트업. / 표=김은실 디자이너

그간 정 회장은 2007년 취임 이래 적극적인 인수합병(M&A)와 투자로 다양한 영역에 발을 들였다. 대표적으로 2011년 말 가구업체 리바트를 사들였고, 2012년 초 한섬을 인수하며 패션사업에 진출했다. 최근 들어 현대백화점그룹은 대규모 투자로 인한 M&A 대신 스타트업에도 발을 뻗는 분위기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 회장의 경영 기조에 따라 스타트업 분야에 조용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다른 기업과 달리 현대백화점은 스타트업을 발굴하는데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그룹은 체인지엑스로 스타트업을 모집했을 때도 규모, 투자 여부를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지난 2020년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협의체를 도입하고, 2021년부터 본격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투자 수준을 넘어 스타트업들을 더현대서울에 입점시키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나이스웨더, 스미스앤레더, 킥더허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백화점이 전략적투자자로서 다양한 형태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다른 유통 기업들과 차별화에 나서는 셈이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같은 과녘을 향해 정확히 쏘는 것보다 아무도 보지 못한 과녘을 쏘는 새로운 수를 찾는 노력이 쌓일 때 성장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의 변화된 요구를 찾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생긴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내외부의 경쟁적 경합보다 개방적 관점을 바탕으로 협력과 다양한 이업종 간 연결을 통해 가치의 합을 키워나가야 한다”면서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기되는 다양성과 다름을 수용하면서 일의 의미와 목적에 공감을 기반으로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현대백화점의 스타트업 육성이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대학과 산학협력을 추진했다. 현대백화점 그룹 측은 “지난해 말 신규 유망 사업을 발굴하던 중 온라인 의류 쇼핑의 번거로움을 발견했고, 고객과 수선집을 연결하는 O2O(Online to Offline) 의류 수선 플랫폼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룹 측은 O2O 소프트웨어 개발, 기획의 역량을 보완하고 MZ세대 관점과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대학생들과 앱 ‘얼핏’을 개발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내부 테스트 결과를 반영해 상세 기능 추가 등을 최종 완료한 뒤 사내독립기업, 스핀오프 등을 포함해 사업화 추진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킥더허들의 핏타민. / 사진=한다원 기자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킥더허들의 핏타민. / 사진=한다원 기자
핏타민 매장에서 판매하는 약들. / 사진=한다원 기자
핏타민 매장에서 판매하는 약들. / 사진=한다원 기자

그룹 측에서 투자한 스타트업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현대백화점은 앞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킥더허들에 투자하고,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매장 핏타민을 오픈했다. 핏타민은 인공지능 기반 생활습관 분석을 통해 약사 상담을 통해 나만의 영양제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전날 기자가 더현대서울에 방문해보니, 핏타민에 관심을 두는 MZ세대 소비자들이 많았다. 핏타민은 지난 8월 더현대서울에 첫 매장을 열었다. 핏타민 측에 따르면, 핏타민 구매 고객 중 MZ세대 비중은 68%에 달한다. 또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주변 건기식 브랜드 대비 핏타민은 6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킥더허들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핏타민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었다”면서 “현대백화점이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두면서 킥더허들에 투자하게 됐고, 더현대서울에서 건기식 부문에서 핏타민은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는 배경으로 ‘차별화’를 꼽는다. 대기업의 경우 조직 규모에 따른 복잡성으로 신규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기 쉽지 않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M&A에 나서는 것은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외부 기업이나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대기업 입장에서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내부에서 실현시키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인프라를 갖춘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협업을 통해 서로 윈윈(win-win)효과를 내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스타트업 협력을 통해 스타트업만의 혁신성과 기동성을 벤치마킹하고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사업 추진 역량에 기반해 트렌디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발 빠르게 발굴하고 있다”면서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술 등을 보유한 기업부터 대학생까지 앞으로도 전통적인 유통 부문 외 영역을 아우르는 경계 없는 협업을 추진해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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