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 물적분할 비해 주주가치 훼손 우려 적지만 반대 여론 직면···'자사주의 마법' 우려
전문가 "주주가치 재고 없이 인적분할 추진 어려운 환경"···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책 펼치는 기업들
한국거래소, 인적분할 후 재상장 심사에서 소액주주 보호 방안 여부 평가 반영

지난 22일 OCI 제49기 정기주주총회 진행 모습. /사진=OCI
지난 22일 OCI 제49기 정기주주총회 모습. /사진=OCI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물적분할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주주가치 훼손이 덜한 인적분할로 선회하고 있지만 이 방식마저도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기업가치 상승은 없이 대주주 지배력만 확대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소액주주 권리에 대한 보호 방안 구축에 나서면서 대한제강, 동국제강, 조선내화, 이수화학 등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체제 개편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은 주주환원책 마련에 분주해질 전망이다.

◇과세 이연 특례 일몰 앞두고 줄줄이 인적분할···소액주주들은 ‘우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인적분할 재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한 회사는 현대백화점, OCI, 대한제강, 동국제강, 조선내화, STX 등 11개사에 이른다. 

기업들이 줄줄이 인적분할로 눈을 돌린 이유로는 물적 분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법인세 과세 이연이 꼽힌다. 법인세 과세 이연이란 기업이 지주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법인을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 또는 법인세에 대해 해당 주식 처분 전까지 과세를 미루는 제도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이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 많은 기업이 지주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인적분할은 물적 분할보다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평가된다. 회사를 나눈 뒤 기존 주주들이 신설회사의 주식을 일정 비율대로 나눠 갖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신사업을 분할 상장해 기업가치가 재고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일부 소액주주들은 ‘자사주의 마법’을 우려한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 후 지주사로 전환되면 ‘자사주의 마법’이 일어난다. 신설되는 자회사에서 의결권 있는 신주를 배정받아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식이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0∼2021년 사이 상장기업 144곳을 분석한 결과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크게 강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주회사 전환 전 지배주주(개인) 들은 평균 27.01%의 지분을 보유했는데 지주회사 전환 이후에는 존속회사 45.89%, 신설회사 9.08%의 지분을 갖게 됐다. 반면 외부 주주의 지분율은 기존 57.36%에서 존속회사 39.29%, 신설회사 53.09%로 줄었다.

소액주주들은 인적분할에 따른 '자사주의 마법'을 우려한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주주 설득 나선 기업들

주주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인적분할이 무산되거나 연기된 사례도 나온다. 지난달 현대백화점의 경우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반대로 인적분할 안건이 무산됐다. 렌탈기업 AJ네트웍스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팔레트 사업부 인적분할 일정을 잠정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주가치 재고 없이는 인적분할을 추진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말한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으로 주주권익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적분할의 가장 큰 취지는 기존에 있는 역량을 지주사 체제를 통해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며 “배당금 확대 등 주주가치 재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인적분할에는 지배주주의 경영권 강화 등 다른 속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최근 3세, 4세 경영이 대두되면서 승계문제도 걸려있는 건 맞다. 사안 별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들은 주주환원책 강화로 소액주주들의 표심 얻기에 분주하다. 지난 22일 인적분할을 통한 신설법인 설립 안건을 가결한 OCI가 그 예다. OCI는 주주총회 전인 7일 배당확대와 자사주 소각 방침을 발표했다. 잉여 현금 흐름의 30%를 현금 배당하고 ‘자사주의 마법’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 후에는 보유한 자사주를 연내 소각하겠다는 계획이다. 

정기주주 총회를 하루 앞둔 동국제강 또한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전년보다 100원 늘어난 주당 500원을 배당해 주주가치를 재고하겠단 방침이다. 동국제강은 지난해에도 배당 규모를 200원에서 400원으로 끌어올렸는데 인적분할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설득을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인적분할 추진 계획 기업 자사주 지분율.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자사주 소각 의무 없어···지배주주 유리한 환경 여전

기업들의 주주 설득에도 소액주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한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가 아닌 데다 인적분할 전 자사주 소각을 요청해도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적분할을 앞둔 동국제강·대한제강·조선내화는 아직 자사주 소각에 대한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대한제강(24.7%)과 조선내화(20.0%)는 자사주 지분율이 인적분할 추진 기업 평균(9.1%)보다 높아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다.

한 현대백화점 주주는 “현대백화점이 분할 전 자사주를 전량 소각했다면 인적분할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소각 요청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인적분할 전 자사주 소각이 의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권익이 화두가 되며 이들에 대한 보호책이 마련될 예정이다. 한국거래소는 인적분할 후 재상장 심사 때 기업의 소액주주 보호 방안 여부를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인적분할 재상장 신청 전 주주 의견을 수렴하고 자사주 소각, 배당 성향 상향 등 보호장치를 마련했는지 심사하는 안이 유력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재계가 3세대, 4세대로 넘어가며 승계 작업이 유리한 지주사 체제로 넘어가기 위해 인적분할을 하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우려를 종식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주주들과 컨센서스(의견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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