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불법사금융 찾는 저신용자 늘어
시장 상황 고려한 유연한 금리 정책 논의 필요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포용금융’이라는 명분을 걸고 단행했던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7월 정부는 대부업체의 폭리를 막고 서민들의 대출 이자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로 법정 최고금리를 기존 연 24%에서 20%로 하향했다. 당시에도 금융권에서는 최고금리 규제 강화가 저신용 차주의 대출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서민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저신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에서 따르면 지난해 우수 대부업체의 75.0%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신규 대출승인 고객 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신용자의 57.6%는 법에 따라 등록되지 않은 불법 대부업체임을 사전에 알고도 돈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사금융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는 금리 산정 체계라는 시장 원리를 간과한 정책의 부작용이었다. 대출 금리는 차주의 신용도에 따라 결정된다. 금융사들은 차주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대손비용을 대출금리에 반영한다. 저신용자일수록 부실 위험이 높은 탓에 대손비용이 높다. 그러나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높은 부실 위험에 수반되는 대손비용을 대출금리에 제대로 반영할 수 없게 된다. 금융사 입장에서 저신용자 대상 대출은 수익성 대비 손실 위험이 높은 상품이 됐다. 결국 부실 위험이 높고 수익성까지 떨어지는 저신용자 대출을 취급할 유인이 없는 셈이다. 제도권 금융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부업체마저 저신용자 대출 취급을 포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금리 인하를 통해 이자 부담을 경감시켜 포용금융을 증진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저신용자들을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면서 오히려 포용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불법사금융을 찾은 저신용자들은 법정 최고금리 이상의 매우 높은 금리 부담을 지게 된다. 결국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정책의 취지까지 퇴색된 셈이다.

불법사금융까지 손을 벌린다는 건 당장의 자금난 해결에 급급한 취약차주들이 많다는 의미다. 특히 올해 들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저신용자들의 대출 문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괄적으로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맞게 유연한 최고금리 조절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 시장 현실을 도외시한 섣부른 선의의 정책보다는 불법사금융에 내몰린 저신용자들의 대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응책이 절실한 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