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현대重-대우조선 합병 후 LNG 독과점 우려···해소 불가능에 가까워
산업은행 대우조선 인수제안 거절한 삼성重···상대적으로 마음 편해
인수 결렬되면 현대重 타격보단 불확실성 확대되는 대우조선에 치명적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조선 3사가 올 상반기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94%를 수주했다. 고부가가치 선종인 LNG선을 ‘싹쓸이 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마냥 반가울 것만 같은 소식이지만 각 업체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현대중공업그룹·대우조선해양 등은 경우 근심도 커지는 양상이다.

19일 관련업계와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발주된 LNG선은 152만9421CGT였다. 이 중 국내 조선사의 수주량은 143만352CGT에 달한다. 이 같은 추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당장 금년 하반기부터 카타르 페트롤리엄(QP)으로부터의 선박주문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카타르 국영석유회사 QP는 지난해 6월 국내 3사와 LNG선 건조공간 확보를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바 있다.

소위 ‘카타르 잭팟’이라 일컬어지는 QP의 전체발주량은 120여척 규모로 알려졌으며 중국 후동중화조선에 배분된 16척을 제외한 전 선박이 국내 3사에 맡겨진다. 세계 최대 LNG생산국 카타르 정부가 오는 2027년까지 연산량을 기존 7700만톤에서 1억2600만톤으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대규모 LNG 수출기지를 삼성물산에 의뢰해 건설 중이며, 국내 조선사 등을 통해 확보한 LNG선으로 LNG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복안이다.

QP를 포함한 글로벌 선사들이 앞 다퉈 국내 조선사에 ‘러브콜’을 보내는 까닭은 LNG선 건조능력을 보유한 조선사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사의 기준을 충족시킬만한 건조능력을 보유한 조선사는 QP에 납품하기로 한 국내 3사와 후동중화조선 등으로 국한되며, 이들 4개 회사 가운데서도 국내업체와 후동중화조선 간 기술격차가 상당하다는 게 조선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LNG선이 다른 선종들보다 높은 단가를 자랑하는 만큼 상당기간 침체기를 걸었던 국내 조선사들에게는 이 같은 수주행보가 반등의 계기가 될 것이라 예견된다. 지난해 글로벌 전체 LNG선 발주량은 51척이었다. QP 한 곳에서만 100척이 넘는 LNG선의 주문이 잇따를 예정이어서 호재기간도 상당기간 이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3사가 서로 다른 표정을 짓게 된 원인은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을 찾는 ‘조선빅딜’ 때문이다.

2019년 3월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본 계약은 같은 해 1월 31일 체결된 인수관련 기본합의서가 골자였다. 해당 합의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에도 인수제안 요청을 했으며 이에 삼성 측이 인수의사가 없음을 피력했다. 당시 이 제안을 두고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에 특혜를 준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한 인수요청이었다”고 평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거절했고, 현대중공업은 이에 응했다.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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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6월 기존 현대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존속법인)과 신설법인 현대중공업으로 물적분할됐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을 거느린 그룹 내 조선사업 중간지주사로 거듭났다.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완료되면 한국조선해양 산하에 4개 조선소가 자리하는 지배구조가 완성되게 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6개국으로부터 결합심사를 받게 됐다. 모든 국가의 승인을 얻어야 합병이 가능하다.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 등은 ‘무조건 승인’ 결정을 내렸으나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은 심사가 아직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심사주체는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위는 이번 합병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경남 거제 및 인근 지역의 경제타격을 우려하는 정치적 부담이 심사의 변수로 떠올랐다. 경제 갈등을 빚고 있으며 글로벌 조선 ‘톱티어(Top-tier)’ 자리를 한국에 빼앗긴 일본의 판단이 가장 늦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일본의 이 같은 사정들로 인해 합병의 관건으로 떠오른 게 EU의 판단이다. 문제는 EU가 두 회사의 합병으로 LNG선 분야에서의 독과점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앞서 EU는 유럽 최대 조선사인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incantieri)의 프랑스 아틀란틱조선소(Chantiers de l' Atlantique) 인수를 불허한 바 있다. 크루즈선 1·3위 회사의 합병으로 해당 선종분야의 과독점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한국 조선 3사의 수주낭보가 전해질수록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부담감이 가해지는 형국이다. 피인수 주체인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확대된다. 비록 형식적인 인수요청이라 평가되지만 산업은행의 제안을 거절한 삼성중공업은 영업활동을 제외한 고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말 그래도 ‘호재’에 ‘쾌재’만을 부를 수 있게 된 셈이다.

LNG선 시장 특수성을 감안하면 독과점 해소방안이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EU가 ‘조건부 승인’을 내릴 가능성이 높지만 이 경우 현대중공업그룹 스스로 인수를 포기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점유율이 6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EU가 합병 후 30~40%대 점유율을 유지해 줄 것을 합병조건으로 내 걸 경우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고 점쳤다.

합병이 결렬될 경우 피해는 대우조선해양에 집중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명분으로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개편을 이뤘으며, 합병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조선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익이 지주사 실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배당 등을 통한 오너일가의 실익으로 이어지며,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아산재단 이사장)에서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의 승계에도 호재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반면 3년 가까이 기업결합심사를 치른 대우조선해양은 또 다시 새 주인을 기다려야 한다. 앞서서도 복수의 대기업들이 인수를 시도하다 불발된 사례가 있어 재차 민영화되기까지 상당기간 소요될 전망이다. 글로벌 조선업계 슈퍼사이클 도래가 기대되는 시점에 선주들이 가장 꺼려하는 불확실성을 품고 사업에 임해야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한 때 1만명을 훌쩍 넘었던 대우조선해양 근로자 수는 올 1분기 말 8635명으로 하락하는 등 장기간 불황과 회사 정상화 노력 과정에서 회사가 위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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