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 비스마야 사업장 ‘슬로우다운’ 조치···재정 악화로 공사대금 지급 차질
한화건설, 현장 인력 700명 해고 등 손실 대비 나서
상반기 예정 미수금 회수도 불투명···현금창출능력 ‘빨간불’

한화건설이 주력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가 공사가 지연될 전망이다. 발주처인 이라크 정부가 재정 악화로 공사대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와 국제 유가 폭락 여파로 한화건설의 주력 사업인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Bismayah New City Project·BNCP)에 비상이 걸렸다. 이라크 정부가 재정 악화를 이유로 한화건설 측에 ‘슬로우다운’(공사진행 지연)을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공사대금 회수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화건설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과거 대규모 손실에 영향을 미쳤던 IS 내전 당시 슬로우다운 사태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라크 정부는 한화건설이 진행하고 있는 BNCP 현장에 슬로우다운 조치를 내렸다. 이번 결정은 유가 하락으로 인해 이라크의 재정이 악화된 영향이 크다. 이라크는 석유 판매가 재정 수입의 95%를 차지한다. 당초 올해 유가가 배럴당 56달러 수준으로 예상을 하고 예산을 짰다. 하지만 국제기준유가 역할을 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20달러 선에 머물고 있어, 재정 수입이 급감한 상황이다. 공정률에 따라 공사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이라크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건설은 이라크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치로 사업 규모가 축소되고 공사진행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인력을 축소하는 등 손실 대비에 나선 모습이다. 이라크 정부의 통보 이후 BNCP 기술자·엔지니어 등 현장 근로자 700여명을 해고했다. 이라크 사정에 정통한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라크가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유가 하락에 따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서 국방부가 여러 투자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며 “재정이 더 악화될 경우 ‘완전한’ 중단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일부 이라크 언론사에서는 BNCP 현장이 중단됐다고 말할 정도로 현지 상황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화건설은 지난 2012년 5월 이라크에서 BNCP 사업권을 따냈다. BNCP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인근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이 공사로 약 10만 가구 주택과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주택 사업비만 9조6000억원에 달하며, 사회기반시설까지 합치면 도급금액은 총 12조원이 넘는다. BNCP는 한화건설 실적에서 최근 5개년 매출의 16%, 매출총이익의 28%, 지난해 말 공사잔액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화건설의 향후 실적 성장이 BNCP에 달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라크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한화건설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과거 한화건설은 IS 사태 때 BNCP 현장의 슬로우다운 영향으로 실적 부진을 겪었다. 당시에도 내전과 저유가에 따른 이라크 재정 상황 악화 등으로 공사대금 회수가 지연되면서 한화건설은 공사비 투입을 조절하고 공기를 지연시켜야 했다. 지연으로 인한 BNCP 매출·이익 축소는 2015~2017년 회사의 현금창출력 저하로 이어졌다. 여기에 플랜트부문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한화건설은 대규모 영업 손실과 신용등급 하락을 경험했다.

/ 자료=나이스신용평가

BNCP 사업은 이라크의 정치적인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2018년 유가가 상승하고, IS와의 전쟁이 종결되는 등 이라크 정세가 안정되면서 미수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화건설이 2018년과 지난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7년까지 마이너스 4200억원이었던 잉여현금흐름도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고, 2015년 말 약 2조원에 달 하던 회사의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1조원대로 감소했다. 한화건설 신용등급도 3년 9개월 만에 A- 등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하지만 또다시 BNCP 현장이 슬로우다운에 들어가면서 한화건설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미수금 회수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10월 이후로 공사대금 수령내역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18년 말 약 1900억원까지 감소했던 미수금은 올해 2월 7060억원까지 증가했다. 미수금 증가 여파로 순차입금(올해 3월 말 기준)은 지난해 말 대비 약 4700억원 증가한 한 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당초 한화 건설은 상반기 중 공사 미수금의 50%(약 3500억원)을 회수할 계획이었지만 이라크의 재정 악화로 이마저도 불투명하게 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사대금 수령 지연 시 매출이나 이익규모가 감소해 현금창출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아울러 공사가 지연될수록 차임금에 대한 금융비용이 커진다는 점도 한화건설에겐 부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원유 수요까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이라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고 덧붙였다.

미수금 회수가 지속되면 최악의 경우 신용등급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나이스신용평가는 현금창출력이 크게 떨어질 경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홍세진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BNCP의 공사대금 회수 지연, 진행 프로젝트 관련 운전자금 선투입 확대와 현지법인에 대한 추가 자금 대여 등에 따른 현금흐름 둔화와 차입증가로 EBIT/조정금융비용이 1.2배 이하로 저하되고, 마이너스 영업현금흐름이 지속될 경우 등급하향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화건설은 단기적으로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상화될 것이란 입장이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 및 유가하락으로 이라크 재정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다운사이징을 요청해왔으며, 이에 따라 슬로우다운으로 사업진척에 속도조절을 하면서 진행하고 있다”며 “대규모 인원 감축은 사업 범위가 줄어듬에 따라 손실 축소 차원에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IS 사태 때도 슬로우다운이 이뤄졌지만, 몇 년이 지난 이후 정상화된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한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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