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기준과 범위 불명확해···영향평가 충분히 거쳐야”
해외 사업자에 대한 낮은 규제 집행력···"국내 기업 역차별 우려"
“n번방 방지법 등 인터넷규제입법 처리를 21대 국회로 넘겨야 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 체감규제포럼,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은 12일 오전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20대 국회 인터넷산업 규제 법안 졸속 처리 중단을 촉구했다.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를 최근 통과했다.
이들 단체는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임기 말 쟁점법안 졸속 처리의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해관계자, 전문가, 산업계 의견을 청취하고 사회·경제적 영향평가 등을 충분히 거친 후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n번방 방지법’ 등 인터넷규제입법 처리를 21대 국회로 넘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를 남겨뒀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정부와 국회가 플랫폼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아니다”며 “민간인 사찰의 한 방법으로 변질돼 빅브라더 시대와 통제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n번방 방지법은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등 유해 콘텐츠 유포 방지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 제44조의 9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은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책임자를 지정해야 하며, 해당 책임자는 불법촬영물 등의 삭제, 접속 차단 및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 등을 담당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문제는 조치해야 하는 기준이나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메신저, 이메일, 비공개 블로그 등 국민의 사생활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박 사무총장은 “개정안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민의 인권침해 소지와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를 막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과기부와 방통위가 법상 모호한 기준과 범위를 명확히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국내외 사업자 간 규제 역차별 문제도 제기됐다. n번방 사건이 발생한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 집행력을 보장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민호 체감규제포럼 공동대표 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가통신사업자 대상의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의무 조항의 경우 실제 n번방 사건의 통로가 된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은 전혀 진보된 바 없이 국내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만 늘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사무총장은 “법이라는 것은 일률적인 자와 같아서 설정하면 국내외 다 적용받게 된다. 해외 사업자 문제로 법을 개정하는 경우 해외 사업자가 그것을 잘 지키면 다행이지만 집행력의 한계와 상호주의 원칙 때문에 지켜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는 국내 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내 사업자이 더 어려워지게 되기 때문에 유럽처럼 몇 년간 전문가집단을 구성해 논의해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당장 n번방 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규제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