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반포 등 주요 사업장 내달 해임총회 개최
“정부 고강도 규제로 사업 지연···소통 부족으로 조합 내홍 심화”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조합장 해임 총회가 잇따라 열릴 전망이다. 조합의 성급한 일처리로 인해 조합원들이 재산상 피해를 입게 생겼다는 게 해임 사유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조합장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조합이 인허가를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은데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정비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하면서 조합 내부 갈등이 심해진 탓이다. 사업 지연으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사정권에 들어온 조합들은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 재개발 사업장에선 다음달 14일 조합장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가 열린다. 이날 총회에는 조합장과 감사 2명, 이사 5명의 해임·직무 정지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다. 조합원들은 그동안 조합 집행부의 독단적인 일처리로 인해 사업이 지연됐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제안한 대안설계가 인·허가를 받지 못하는 등의 논란이 불거진 이후 내부 갈등은 더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흑석9구역은 중앙대 인근 흑석동 90번지 일대(9만4000㎡)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조합은 당초 최고 25층, 21개 동, 1538가구 규모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롯데건설은 최고 층수를 28층으로 높이고 동수는 11개 동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하면서 시공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롯데건설이 제시한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안건은 인·허가 문턱에서 막혔다. 서울시가 흑석9구역이 속한 2종 일반주거지의 최고 층수를 25층으로 제안하고 있어서다.

이후 롯데건설은 층수를 25층으로 낮추고, 대안설계보다 동수를 5개 동 늘린 16개 동짜리 안을 꺼냈다. 하지만 이 안은 조합의 원안과는 차이가 커서 다시 인·허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흑석9구역의 한 조합원은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제안한 대안설계가 인·허가를 받지 못함에 따라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이런 부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조합 집행부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근에 위치한 흑석3구역도 다음달 초 조합장 해임 총회를 열 계획이다. 흑석3구역은 분양가 상한제를 피했지만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심해졌다. 이곳은 이달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흑석 리버파크자이’의 일반분양가를 3.3㎡당 평균 2813만원에 분양보증 받았다. 이는 당초 기대했던 3200만원선에서 400만원 가량 낮아진 것이다. 조합원들은 HUG의 분양가 심사 기준이 완화됐는데도 조합 집행부가 협상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조합 집행부가 교체 위기해 쳐했다. 최근 일부 조합원들은 다음달 21일 조합장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 소집 공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집행부가 직무유기, 태만, 관계법령 위반 등으로 조합에 부당한 손해를 끼쳤다는 게 해임 사유다. 특히 조합은 지난해 8월 관리처분계획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패소했다. 향후 2‧3심에서 이 판결이 확정되면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재초환이 적용된다. 재초환을 적용받으면 조합원 1인당 11억~20억원의 부담금이 추가로 낼 것으로 보인다.

강동구 둔촌주공 역시 조합장 해임 여부를 놓고 조합원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다. 이 조합은 희망 분양가와 HUG가 제시한 분양가의 차이가 3.3㎡당 500만원을 넘어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조합원들은 최종 협상에 실패하면 분양가 협상과 공사비 산정 문제 등의 책임을 물어 조합장 해임을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장 갈등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를 고수하고 있는데다 조합원 간 이해관계와 이견이 더 분분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로 사업 속도가 더뎠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다보니 조합원들의 불안감이 큰 상황이다”며 “분양가 상한제 등 조합원들의 재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들이 다가올수록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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