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부터 소액주주·사외이사 등 새로운 경영 변수로 떠올라

요금체계 방식 변경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배달 앱 국내 1위 업체인 '배달의 민족'(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서울 송파구 본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요금체계 방식 변경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배달 앱 국내 1위 업체인 '배달의 민족'(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서울 송파구 본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사회가 복잡다양화되면서 기업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곳 역시 다원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과거 기업들이 신경 써야 할 대상은 사정기관이나 국회, 시민단체 정도였으나 이제 지자체, 소액주주들의 움직임도 잘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 행태에 대해 비판하거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곳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검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업 사정을 하는 기관들이고 그 외 국회, 시민단체 등이 있었다. 특히 시민단체의 고발에 이어 수사가 이어지는 패턴이 많았다.

최근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기업 사정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기업들은 기존에 신경을 덜 쓰던 곳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는 지자체도 기업 경영 행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사는 연이어 기업의 부당한 경영 행태를 지적하고, 더 나아가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동방항공에서 한국 승무원 무더기 해고 논란이 일었을 때도 중앙정부는 오히려 별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재명 지사는 이를 비판했고 경기도는 고용노동부가 해당 사안을 국제노동기구(ILO)에 진정해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배달의민족(배민)’이 수수료 제도를 변경한 것을 비판하고, 나아가 공공배달앱 도입에 나섰다. 이렇게 해당 사안이 공론화되자 이제 합병심사를 진행 중인 공정위까지 조사에 나서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지자체장의 강력한 움직임이 기존 기업 사정이나 시민운동 보다 더 즉각적으로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흐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업 총수들은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얻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됐다. 승계를 거듭하다 보면 지분율이 선대 때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선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꽉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이번 한진칼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의 중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 회장이 이번 KCGI 및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의 주총 승부에서 소액주주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면 사내이사 선임은 불가능했다. 한 대기업 인사는 “신경을 안 쓰는 듯 하지만 기업들은 주총 전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상당한 물밑 움직임을 벌인다”고 전했다.

소액주주와 더불어 과거엔 거수기처럼 여겨졌던 사외이사들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임기 제한으로 사외이사가 귀해지면서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미 기업들은 사외이사 모시기에 한창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적 행보를 강조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과거보다 한층 더 강해졌다.

이와 더불어 기업들은 직원들의 눈치도 보게 됐다. 이는 과거 ‘노조 눈치보기’와는 사뭇 다르다. 조직된 직원들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움직임과 만족도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등에 언제 어떤 이야기가 올라올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대기업 관계자들은 항상 해당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사라지고 이직도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은 직원들의 만족도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설치한 내부 감시 기관의 움직임을 신경 써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중 설치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노조, 승계 등 삼성의 가장 민감한 문제들을 공론화시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오는 10일까지 삼성 준법위의 승계 문제 사과 권고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준법위는 과거 비서실이나 미래전략실과 달리 아예 기존에 없던 조직이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질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했다. 새로운 기업 경영 감시 시스템인 만큼 예측하지 못한 일들도 해낼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곳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부각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우선 그만큼 기업들이 준법경영, 혹은 지역사회 및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사외인사 등 기업 감시 시스템이나 주주들, 지역사회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경영환경도 외국과 비슷하게 선진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신경 써야 할 곳이 많아지는 만큼 경영에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한 재계 인사는 “외국도 엄격하게 기업들의 반시장적 행보에 철퇴를 내리지만 평소엔 기업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경영환경은 보장해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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