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동결···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 논의 필요”
노동계 “위기상황 공감하지만 동결 주장 대해선 의구심”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3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달 3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제위기가 심화함에 따라 재계에서는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노동계는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최저임금 동결’ 주장에 대해선 반발하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매년 3월 31일까지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에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른 것이다. 최임위는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인 6월 29일까지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최임위 위원은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인,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인, 정부측 공익위원 9인으로 구성된다. 위원회가 구성되면 회의를 거쳐 3분의 1 이상 참석 및 과반수 찬성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이를 노동부는 8월 5일까지 확정·고시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적용 연도를 기준으로 2018년 16.4%, 2019년 10.9%로 큰 폭으로 상승해 오다가 최저임금 인상 반대 여론 탓에 올해는 2.9%로 떨어졌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의 2.7%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의 2.8%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서는 코로나19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계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최소한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복합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게 되면 영세자영업자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최소한 동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재계에서는 경기가 수년간 안 좋았고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예측불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최저임금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있다”며 “최저임금 결정은 임금근로자에겐 적절한 수준의 임금이, 사용자에겐 지불능력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최저임금 결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재계의 최저임금 동결 주장의 근거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난 31일 고용부가 발표한 ‘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1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는 1848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만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시작한 2009년 증가자 수와 증가율 모두 가장 적은 수를 기록한 것이다. 반면 이직자(신규 실직자) 수는 93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8% 늘었다. 이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의 이직자 수는 84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2% 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 반영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이 극심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엔 공감하지만 최저임금 동결 주장엔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무급휴직에 들어가거나 해고 위기에 처한 노동자가 많은 상황에서 임금부터 삭감하겠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금 상황이 어려운 것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다만 아직 최임위 구성도 안 된 상황에서 동결을 주장하는 것은 경제 위기를 빙자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올해 최저임금 논의는 내년 시행을 앞두고 하는 것인데 내년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먼저 동결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현 상황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최저임금에 대한 우리의 요구나 세부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재계는 올해 ‘업종별·규모별 차등화’ 방안을 다시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최임위 사용자위원들은 지난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서비스업과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차등화 논의를 요구한 바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6월 29일까지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게 돼 있으니까 올해도 예년 일정과 마찬가지로 6월 말 경 노사 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면서 “올해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동결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한편 업종별 차등적용 방안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임금은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리기 힘든 하방경직성이 있어 노동계 측에서 인하에 동의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방안으로 최저임금은 동결하되 정부가 사용자 측 특히 영세업체의 인건비 부담을 일정 부분 보전해주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일자리를 유지하고 자영업자 도산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자체가 쉽지 않기에 재계가 주장하는 업종별 차등적용 방안은 이번 논의에서 큰 쟁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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