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조 교수 “주주 배임죄는 법리 모르는 주장”
금감원도 “상법, 판례는 이사의 경영판단 원칙 중시” 주장

지난 2018년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키코(KIKO)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최근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에 피해 기업에 배상하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은  ‘주주에 대한 배임’ 문제를 꺼내 맞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키코(KIKO) 배상 권고에 맞서며 ‘주주에 대한 배임’ 우려를 내놓고 있지만 이 주장이 법리상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은행 주장대로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를 지급한다해도 주주에 대한 배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이번 키코 배상이 경영자의 민·형사상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배상 거부가 소비자에 대한 신임을 저버리는 행위가 된다고 강조한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은 은행들에 키코 피해기업에 대해 배상하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이 권고에 따라 지급 결정을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은행들은 주주에 대한 배임죄가 우려된다며 당국과 맞서는 모습이다. 

장덕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 은행들이 법리상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며 “주주가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것이 확립된 법리다. 회사 또는 이사의 의무 상대방은 주주가 아니라 회사”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상법과 회사법상 주주는 경영자의 판단에 대해 배임 등의 책임을 추궁할 수 없게 돼 있다. 상법 제401조는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그 임무를 게을리할 때 그 이사는 제3자에 대해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데 여기서 주주는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주식 같은 간접 손해의 경우 주주 제외설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판례도 같은 논리다. 대표이사가 회사 재산을 횡령해 회사 자산이 줄어 회사가 손해를 입고 결과적으로 주주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되는 간접적인 손해가 발생해도 상법 401조 1항에서 말하는 손해의 개념에 주주는 포함되지 않아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이같은 논리대로라면 은행들이 금감원의 배상 권고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해도 은행의 경영자는 배임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특히 장 교수는 “자연채무 법리에 따라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를 지급해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자연채무는 우리나라 법학의 통설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자연채무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채무이지만 채무자가 사회 관념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채무를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도의 관념에 적합한 채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예는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다.

아울러 상법상 ‘경영판단의 원칙’에 따라 은행 경영자는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를 변제해도 법원에서 경영자의 판단을 인정할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경영자가 자신의 판단에 의해 소멸시효가 지난 건을 해결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법원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은 흔히 말하듯 1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 설명에 의하면 키코 사안으로 은행이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도 주주나 제3자가 회사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없고 이를 입증하기도 어려울 상황이다. 또 이사가 명백히 법령을 위반하거나 비합리적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닌 한 법원이 회사의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경영자의 주장을 인정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금감원도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금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키코 불완전판매에 따라 지급해야 했던 배상금을 뒤늦게 지급하는 것을 배임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은행이 배상금 지급 여부에 따른 이해득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종국적으로 은행에 이익이 된다는 경영진의 신중한 판단(경영판단 원칙) 하에 지급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금감원 주장은 배임죄는 형법 355조 등에 따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의 신임을 저버리는 위법행위를 함으로써 그 타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경우 성립되는데, 과연 키코 불완전판매로 인한 배상이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 보도자료에서 대법원 판결도 제시했다. 판례는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의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배임죄의 행사책임을 묻기는 곤란하다”고 말하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대법원에서 은행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키코 계약과 관련해 제기된 공정성과 사기성은 부인했지만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사례별로 인정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돼 최종 배상비율 산정 것이며 이럴 경우 배상금을 늦게 지급하는 것이 배임행위에 해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이사에 대한 책임은 회사가 묻는 것이고 주주가 물을 수 없다”며 “회사 또한 장기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기에 배임이 성립할 수 없다. 지금 은행들이 잘못된 법적 판단을 내렸거나 알면서도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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