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단체 “징벌배상제·집단소송제 빠져 있어”···실효성 의문 지적도

금융소비자 보호법 6대 판매원칙/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금융소비자 보호법 6대 판매원칙/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9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안(금소법)’을 두고 금융권과 소비자단체에서 각기 다르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선 규제로 인한 추후 분쟁 소지 및 악용 우려가 제기되는 한편, 소비자단체 측에선 징벌적 손해배상 및 집단소송제 내용이 빠져 있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 ‘위법계약 해지권’, 위법성 판단 기준 모호···“단순 불만에 따른 해지 요구 우려”

6일 국회에 따르면 금소법이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0명 중 찬성 178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지난 2011년 처음 발의된 이후 9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금소법은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됐던 ‘6대 판매 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확대 적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6대 판매 원칙은 ▲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 권유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이다.

만일 금융사가 이 판매 원칙을 위반해 계약을 체결한 경우 소비자에게 5년 이내 해당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일명 ‘위법 계약 해지권’이 부여된다. 또한 금융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해지 요구를 거부한 때에는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가 가능해진다. 설명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고의 또는 과실 입증 책임도 금융 소비자가 아닌 금융상품 판매업자가 지게 된다.

금융권에선 이 ‘위법 계약 해지권’을 두고 말이 나온다. 금소법 제정안에는 영업행위 준수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위법성 판단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다. 때문에 계약의 해지 요구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면 금융상품에 따라 분쟁 소지가 늘어나거나 거래 안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계약 해지 요구권의 구체적 기준 없이 포괄적으로 적용되면 향후 소비자가 책임 모면을 위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DLF 사태 이후 금융 소비자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한 입법 취지엔 공감한다”면서도 “금소법 제정으로 위법 계약 해지 요구권이 인정되면 계약에 대한 단순 불만 사항에 대해서도 해지를 요구하는 등 불필요한 분쟁이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설명 의무를 지켜 상품에 대한 리스크나 상세 내용을 제대로 고지했음에도 추후에 손실이 나면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고객도 종종 있다”며 “이런 때를 대비해 거래마다 녹취 및 서명 자료 등을 수집해 오고 있지만, 이제 과실 입증 책임이 금융사에 넘어온 만큼 거래 자료 수집 및 보관에 따른 시간과 비용 부담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 소비자단체 “금소법, 징벌배상제·집단소송 등 알맹이 빠져 있어”

한편 소비자단체 및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금소법 제정에 ‘징벌적 손해배상’ 및 ‘집단소송제’ 내용이 빠져 있어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과거 금융소비자법의 초기 발의안에는 금융상품 판매업자 등의 위법행위로 인해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양산되는 등 위법성이 큰 경우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해당 발의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징벌적 손해배상 내용은 빠진 채 대신 ‘징벌적 과징금’으로 수위를 낮추게 됐다.

이전 발의안에 있던 집단소송제도도 빠졌다. 금융상품으로 인한 분쟁의 쟁점이 다수 피해자에게 공통될 경우 집단소송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두고 이미 법제사법위원회에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전면 개정안이 상정돼 있어 사안이 중복된다는 입장이 제기되면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소법 통과 자체는 환영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입은 금융 소비자들의 소송비용이나 시간 등이 대폭 절약될 수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마련되면 금융사들이 좀 더 소비자 친화적으로 세밀한 상품 개발과 판매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텐데 이런 점이 이번 금소법에 반영되지 못해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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