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중국 부추기는 리스크들···“당국의 개입 및 높아진 인건비도 매력 반감 한몫”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중국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기회의 땅’으로 여기며 중국 진출에 열을 올리던 과거와 대비되는 모양새다. 인식의 변화는 방대한 시장에 비해 각종 리스크가 산적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페렴)’ 확산으로 이 같은 인식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중국 내 우한 폐렴 확진자는 5974명이다. 한국·일본·홍콩·마카오 등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에만 6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독일·프랑스(각 4명) 등 유럽과 미국(5명)·캐나다(3명) 등 북미 지역은 물론이고 호주(5명)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을 제외한 지구촌 전역이 우한 폐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발병지인 중국에서의 피해가 가장 크다. 중국 현지에서만 1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8일 하루 사이에 확진자는 1459명, 사망자는 26명이 늘어났다. 2002년 11월부터 이듬해까지 맹위를 떨쳤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 때보다 위급한 수준이다. 당시 중국에서 사스 확진자는 총 5300여명이었으며, 이 중 336명이 사망했다.

비단 보건당국만 비상이 걸린 것은 아니다. 대인 접촉에 기인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탓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들에 대한 현지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사업장도 예외가 아니다. 오는 30일까지 춘절 연휴를 맞아 가동을 중단한 공장들을 상대로 중국 정부가 재가동을 늦출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자연히 기업들의 생산 차질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도 더욱 차갑게 바뀌는 모양새다. 중국 현지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보유한 한 기업 관계자는 “시장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더 이상 기업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기업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들을 내비쳤다. 일각에선 “차이나 엑소더스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점치기도 했다.

‘차이나 엑소더스(China Exodus)’란 이름 그대로 탈(脫)중국 현상을 일컫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장 개방에 나선 중국은 저렴한 인건비와 정책 지원, 방대한 내수 시장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라인을 유치했다. 북미·유럽 등의 기업들은 아시아 생산 거점으로 중국을 활용했고, 자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일본 등 인접 국가들도 현지 투자에 적극 나섰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칭도 이때 얻었다. 한국은 대표적인 수혜국 중 하나로 손꼽혔다. 실제 중국 진출을 발판 삼아 복수의 대기업이 대거 성장하기도 했다. 중국에서의 과실이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한국은 이웃 국가인 까닭에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고, 공산당 단일 정당 체제인 탓에 예기치 못한 변수도 많았다. 과도한 인구 탓에 이번과 같이 전염병에 의한 잠재적 위험 요인도 컸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스와 한한령(限韓令)이다. 사스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교류가 잦은 중국 및 아시아, 유럽, 북미 등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전 세계 32개국에서 8300여명이 감염됐다. 이 중 7000여명은 중국과 홍콩에서 나왔다. 공기 중 전염으로 확진자는 물론이고 의심환자까지 격리돼야 했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업장이 가동을 멈추거나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한한령은 한국에만 해당된 위협 요인이었다. 2016년 7월 한·미 양국 간 협정에 의해 한반도에 1개 포대 규모의 ‘고고도 비사일방어체계(THAAD)’가 배치되자 중국은 즉각 한국을 향한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 특히 중국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엔터테인먼트·화장품 등의 사업을 대상으로 선제적 보복이 이뤄졌다. 이어 유통·여행 등으로 점차 범위가 확산됐다.

그밖에도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주요 사업 분야에 걸쳐 중국 당국의 개입이 물밑에서 노골적으로 이뤄진다는 점과 과거에 비해 중국의 인건비가 대폭 상승했다는 점 역시 사업적 측면에서 중국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중국에서는, 특히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은 정치·문화·질병 등 더욱 많은 리스크들을 감수하며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삼성·현대차 등을 시작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도 중국 생산 비중을 낮추는 추세”라며 “중국의 대안으로 인도 및 동남아시아로의 생산 거점 확대를 꾀하던 와중에 이번 우한 폐렴 사태가 확산되면서, 이 같은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우한폐렴 사태가 조속히 진화되지 않을 경우, 단기적으로 인적교류가 감소하고 현지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제조업뿐 아니라, 소비재·여행·관광 등 다방면의 산업에서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윤 교수는 또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으로 중국에서의 생산 이점이 많이 감소한 상황에서 이번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중기적으로 신 시장으로 옮기려는 차이나 엑소더스 현상 또한 가속화 될 조짐”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향후 대응 역시 주목된다.

이정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태를 맞아 각 국가가 어떤 대응 조치를 마련하는지 여부 역시 기업의 미래투자 측면에서 상당히 고려되는 부분”이라며 “중국뿐 아니라 ‘포스트 차이나’로 각광받는 나라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번 우한 폐렴 사태를 중국이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해 조기에 해소할 수 있을지에 따라 향후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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