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째 이어지는 출근 저지 투쟁···윤종원 행장과 노조 모두 부담
청와대·여당의 재발 방지 또는 노동이사제 도입 등 협상 카드 거론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출근 첫 날인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로부터 출근을 저지 당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출근 첫 날인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로부터 출근을 저지 당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의 출근이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혀 장기간 지연됨에 따라 노사 양측의 부담도 함께 가중되고 있다. 임명 후 긴 기간 동안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지 못하자 은행 안팎에서는 업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윤 행장의 자진사퇴가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에 윤 행장과 노조 측 모두 갈등 국면을 수습할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사용 가능한 협상 카드로는 청와대·여당의 개입, 노동이사제 도입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오는 21일로 예정된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임원 선거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13일 오후 서울 중구 본점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대토론회를 진행한다. 노조 집행부는 이 자리에서 윤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의 취지와 경과를 조합원들에게 보고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노조는 지난 3일 윤 행장이 임명된 이후 열흘 동안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청와대 출신 낙하산 인사를 거부한다는 방침 아래 윤 행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중이다. 때문에 윤 행장은 현재 본점이 아닌 외부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노조는 이번 토론회와 관계 없이 투쟁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토론회를 계기로 노조가 출구전략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투쟁이 장기화할수록 경영 공백에 대한 책임이 노조 측에도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윤 행장은 언제든지 노조와 대화하겠다는 입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 자진사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만약 기업은행 노조의 투쟁이 오는 17일까지 이어질 경우 윤 행장은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이 기록했던  출근 저지 기간인 14일(2013년 7월22일~8월4일)을 깨게된다. 때문에 윤 행장 입장에서도 빠른 관계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는 청와대 및 여당의 ‘재발 방지 약속’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노조는 대화의 대상으로 윤 행장 개인이 아닌 청와대와 여당을 지목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선행돼야 투쟁이 종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금노는 지난 2017년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와 ‘낙하산 인사 근절’을 명시한 정책협약을 맺었던 만큼 협약 위반에 대한 사과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박홍배 금노위원장 당선자는 기업은행장 낙하산 저지를 임기 중 첫 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노동이사제도 관계 회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자의 대표가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나 노조 측 추천 인사가 참여하는 노조  추천 이사제가 도입되면 노조는 신임 행장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한 차례 사외이사 추천을 진행했다가 최종 선임에 실패한 바 있다.

물론 노조 측은 여전히 윤 행장과 타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사안 중 하나가 받아들여질 경우 노조도 적당한 명분을 얻게 된다. 성공적으로 투쟁을 마무리할 여건이 마련되면 향후 협상도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노조 측이 추가로 직무급제 도입 포기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노총 임원 선거는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하는 허권 금노위원장 입장에서는 기업은행의 투쟁 구도가 오래 유지될수록 선거에 유리해질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은행 노조와 함께 최대한 투쟁을 이어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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