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KEB하나은행, 대규모 고객 손실 유발···금감원, 최대 80% 배상 권고
주요 시중은행들 일제히 KPI 제도 개편···경영진 제재 여부 ‘촉각’

우리은행(사진 왼쪽)과 KEB하나은행 본사/사진=연합뉴스
우리은행(사진 왼쪽)과 KEB하나은행 본사/사진=연합뉴스

2019년은 은행권이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한 해로 기록됐다. 비이자이익 강화를 위해 일부 은행에서 판매했던 파생결합상품(DLF)이 대규모 손실을 야기하면서 소비자들과 업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불완전판매 사례도 다수 드러나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각 은행은 재발 방지를 위해 인사평가 제도 등 내부 시스템을 개편했다. 금융당국 역시 판매 은행들에게 배상을 권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도 마련했지만 이는 오히려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은행 경영진에 대한 제재 가능성도 남아 있어 DLF 사태의 여파는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 DLF 사태 본격화···금감원, 최대 80% 배상 권고

DLF는 금리·원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 DLS를 은행에서 사모펀드 형태로 편입해 판매하는 파생결합펀드다. 올해 문제가 된 DLF 상품은 크게 두 가지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과 미·영 이자율 스와프(CMS금리) 연계상품이다. 각각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주로 판매한 것이다.

해당 상품들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부터다. 두 상품은 모두 경기 침체 국면에 수익률이 하락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유로존의 경기 둔화 흐름이 DLF 상품 만기 시점까지 지속돼 손실이 현실화되자 피해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결국 지난 9월17일 우리은행의 DLF 상품이 첫 손실 만기를 맞았으며 같은 달 22일 하나은행 DLF 상품에도 첫 손실 만기가 도래했다. 손실률은 각각 60.1%, 46%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계속 DLF 상품의 만기가 찾아와 투자 피해는 더욱 늘어났다. 지난 8월7일 기준 두 은행의 DLF 판매액은 총 7950억원이다. 이 중 이달 초까지 만기가 도래한 투자금은 2080억원(투자자 중도 환매 및 은행 조기 상환 포함)으로 평균 손실률은 52.7%에 달한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분쟁조정 사례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배상비율을 결정했다. 지난 5일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DLF 사태와 관련한 민원 6개의 배상비율을 40~80%로 정했다. 불완전판매 분쟁조정의 경우 일반적으로 영업점 직원의 위반 행위를 기준으로 배상비율을 결정하지만, 이번 분쟁조정은 본점 차원의 과도한 수익 추구 영업 전략과 내부 통제 부실 등도 반영했다.

특히 투자 경험이 없고 난청인 고령(79세)의 치매 환자에게 초고위험 상품을 불완전판매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 가장 높은 수준인 80%로 배상비율을 결정했다. 금감원은 나머지 사례에 대해서도 이번 분조위 배상 기준에 따라 자율 조정 등의 방식으로 조속히 배상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은행들은 앞서 “분조위의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온 만큼 해당 조정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피해자들은 금감원 측에 배상비율 산정 기준 공개를 요구하고 있어 최종 수용 여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DLF분쟁조정 세부기준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DLF피해자대책위원회/사진=금융정의연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DLF분쟁조정 세부기준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DLF피해자대책위원회/사진=금융정의연대

◇은행 내부 시스템 개편부터 금소법 통과까지 후폭풍 지속

DLF 사태의 영향은 은행과 피해자 사이의 금전 배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은행 내부 시스템부터 금융상품 판매 규정 등 업계 전체에 적지 않은 여파를 미치고 있다.

우선 시중은행들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일제히 내부 KPI(핵심성과지표) 개선 작업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고객 중심 자산관리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자산관리(WM) 부문을 혁신하고 영업문화를 고객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판매 실적보다는 고객 관리에 더 집중하고자 4분기에는 자산관리 상품 관련 KPI 평가를 제외할 방침이다. KPI 평가지표도 24개에서 10개로 대폭 축소했다.

또 하나은행은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바로 고객에게 투자 원금을 되돌려주는 ‘투자상품 리콜제’를 도입하고 고객 중심의 영업문화가 확립될 수 있도록 PB 평가지표(KPI)에 있는 ‘고객 수익률 배점’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관련 DLF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던 신한은행도 내년부터 ‘고객 최우선’ 관점에서 KPI를 새롭게 도입하기로 했다. 새롭게 도입되는 KPI 평가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뀌며 ‘목표 달성률 평가’가 추가된다. 신한은행은 이를 통해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협업을 유도해나갈 계획이다. KB국민은행 역시 내년 상반기부터 수수료 수익보다는 고객 수익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KPI를 개편할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사후 대책을 내놨다. 지난 12일 금융위원회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발표된 원안에 따르면 은행의 고위험 사모펀드 판매와 신탁 관련 상품 판매가 사실상 제한됐지만 은행권의 극심한 반발이 있어 ‘일부 허용’으로 완화됐다.

하지만 허용된 상품들도 지난 11월말 은행별 잔액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최대 현상 유지만 할 수 있다. 40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앞으로 시장 확대는 불가능해졌다. 저금리 기조로 인해 내년에는 이자 이익이 좀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은행들로서는 신규 수익원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발의된 후 8년이 지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도 DLF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 첫 문턱을 넘었다.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금소법을 통과시켰다. 금소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규제 강화 논란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 DLF 사태로 여야의 정무위원들은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됐고 결국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로 했다. 앞서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정무위원들은 여야 구분 없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측 증인들을 거세게 질타한 바 있다. 금소법은 금융사의 상품 판매 영업행위 규제와 사전·사후 관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은행 경영진에 대한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23일 윤석헌 금감원장은 “해당 은행 경영진에 대한 징계 수위는 현 시점에서 답변하기 어렵다”며 “제재는 공정하면서도 현행법과 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러면서도 시장에 올바른 시그널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만약 각 은행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가 중징계 수준의 제재를 받으면 임원 취임 또는 연임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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