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의혹 등 비판 내용···1·2심 뒤집고 시민방송 손 들어줘
전합 “객관성 등 의무·사자 명예훼손 존중 위반 아냐”···대법관 6명 ‘반대 의견’도 상당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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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방영돼 보수·진보 간 역사 논란을 부른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단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편향적으로 다뤘다며 방통위 측 손을 들어준 1·2심 판결을 뒤집은 결정이다.

전합은 21일 백년전쟁 방송사인 재단법인 시민방송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재 조치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찬반 7대6의견으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합 사건은 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대법관 12명 등 총 13명이 심리한다. 법원행정처장은 재판 독립성을 위해 제외된다.

전합은 “이 사건 각 방송이 방송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의무와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와 다른 취지의 원심판결을 파기 한다”고 밝혔다.

앞서 시민방송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진보성향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를 총 55회 방영했다.

이 다큐에는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이자 기회주의자로 사적 권력욕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 박 전 대통령이 친일·공산주의자로 미국에 굴복하고 한국 경제성장 업적을 가로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방통위는 같은 해 8월 구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객관성과 공정성’에 관한 조항 위반 및 ‘사자 명예존중’에 관한 조항을 위반했다면서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경고하고 이러한 제재조치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시민방송은 불복해 2013년 11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방통위 손 들어줬고, 2015년 8월 대법원에 상고된 이 사건은 당초 대법원 1부에 배당됐다가, 3년 5개월만인 지난 1월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심리가 진행됐다.

◇전합 “방통위 제재 근거 잘못···공정성·객관성·균형성, 사자명예훼손 위반 아냐”

전합은 다큐 내용이 방송심의기준상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의 의미와 사자 명예존중의 의미를 위반하지 않았고 방송 내용이 관련 법령의 ‘한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전합은 방송내용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는지 심의 할 때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한다는 전제에서 이 사건 다큐가 ‘유로’ 비지상파 방송매체 등을 통해 방영됐고 ‘시청자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전합은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반영해 이 사건 각 방송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심사하면, 이 사건 각 방송이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전합은 다큐의 객관성에 대해 “방송의 전체적인 인상은 역사적 사실과 그 전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정도에 그친다”며 다큐가 왜곡됐다고 보지 않았다.

공정성에 대해서도 “공정성이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하면서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사건 다큐는 이미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봤다.

전합은 다큐가 균형성을 잃지도 않았다고 봤다. 전합은 “이 사건 방송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다큐와 관련 있는 당사자도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러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한 기회가 열려있다”고 했다.

아울러 전합은 다큐가 사자 명예존중 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서도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방송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돼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다큐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관련자 및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기초로했다는 점에서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원고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김재형 대법관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행위, 특히 그 내용에 대해 행정제재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가급적 억제돼야 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 반대의견 낸 대법관 6명 “제작의도 부합하는 자료만 취사선택” 지적

다수의견으로 사건이 파기환송 됐으나 반대의견도 상당했다.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 등 6명은 방통위의 제재가 적법하다고 봤다.

이들은 이 사건 다큐가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을 취사선택해 방송 내용자체가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방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큐가 모욕적 표현을 사용해 사자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자 명예존중을 규정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봤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 사건 제재처분 사유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고, 사자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라며 “다큐가 내세운 자료들은 두 대통령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 중 제작 의도에 부합하도록 선별된 것이었고, 선별된 자료들 중에서도 제작 의도에 부합하지 않은 내용은 누락하거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부 내용만을 발췌·편집해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사실인 것처럼 꾸몄다”고 판단했다. 또 “사용된 표현 역시 저속하고 모욕적인 것으로 점철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따라서 이 사건 다큐는 방송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고, 사자명예존중 의무를 준수하지도 못했다”며 “사자에 대한 모욕과 조롱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에 포함될 수도 없어서 이 사건 제재처분이 적법하다는 원심이 옳다”고 밝혔다.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역사적 인물의 정치적, 정책적 과오가 아니라 인격에 관해 방송할 경우에는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준수의무와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보다 충실하게 지킬 필요가 있다. 방송을 전달함에 있어서 단정적인 표현보다는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되, 모욕적이고 저속한 표현은 삼가야한다”는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냈다.

또 “이 사건 방송 내용이 방송법상 의무를 준수했다고 본다면, (이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우리 사회가 감수할 수 있고 감수해야 한다는 범위내에 있다고 대법원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어서 이를 수긍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며 “주로 개인의 인격을 일방적,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인 이 사건 방송이 공동체의 선에 무슨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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