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명 넘어선 국내 비건 인구···비건인 "외식할 곳 없어서 막막" 토로
편의점·온라인식품몰·식품업체 '비건 식품' 출시 늘어나···열악했던 채식 환경 개선될지 주목

/이미지=셔터스톡(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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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화생존'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트렌드 코리아 2020>가 꼽은 내년도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소개됐다. 특화생존이란 보편을 거부하고 소수의 확실한 만족을 위한 제품이 결국 살아남는 다는 뜻이다. 특화생존 트렌드는 일찌감치 올해부터 불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비건(Vegan)을 짚어보려 한다. 

비건이란 단어가 최근 유통가에 자주 나오고 있다. 비건이란 우유나 계란, 혹은 생선을 먹는 락토나 락토오보, 페스코 등 채식의 여러 종류 중 ‘동물에게서 나온, 혹은 동물 실험을 거친 모든 식품을 먹지 않는 단계’로 채식 중에서도 높은 단계에 위치했다. 국내 비건 인구가 점차 늘면서 비건 관련 식품 산업 역시 확대되는 모양새다. 국내 채식인구는 지난해 기준 100만~1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비건은 50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비건인들을 위해 편의점, 온라인식품몰에서도 비건도시락, 비건식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비주류였던 비건에 대한 관심 증대로 "한국은 채식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편견이 깨질지 주목되는 이유다. 

◇ 비건, 하고 싶지만 

비건 제품 출시와 같은 유통업체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비건들이 놓인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비건을 다짐한 지 4개월차에 접어든 직장인 서윤하(28세)씨는 "SNS에서 살이 올라간 트럭을 타고 도살장에 팔려가는 돼지들을 따라다니며 몰래 몰래 물을 주는 운동가들의 영상을 봤다. 반려견을 꽤 오랫동안 키워오고 있어서 동물 복지에 관심이 가던 차였다"면서 "내 건강만을 추구하는 채식주의가 아닌 착취 당하는 동물을 생각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주변에도 함께 비건을 선언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서씨는 비건식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 채식나라 등 채식 식료품 전문 판매 사이트에서 식품을 구입해 직접 요리하며, 외식을 해야 할 경우 채식 식당을 찾아 간다. 와인이나 맥주도 '비건 와인', '비건 맥주'를 파는 곳으로 간다. 자신의 신념에 따른 가치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도 육식 위주인 식품·요식업계 속에서 비건 신념을 지켜나가기란 어려운 일이라고도 토로했다. 줄어든 선택지 때문이다.

비건을 위한 식당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일반 식당을 가서 채소만 들어있는 음식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해산물은 물론 계란과 우유도 먹지 않는 비건은 동물성 버터와 우유가 들어가는 빵을 먹지 않는다. 고기가 들어가진 않지만 멸치육수를 쓴다거나 쇠고기다시다가 들어가는 국수, 국·탕·찌개 등도 먹을 수 없다. 결국 외식을 위해서는 비건 식당을 찾아가야 하는데, 이런 식당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서씨는 "일반 식당에 가서 나만을 위해 이것 저것 빼서 요리해달라고 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것 아니면 외식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이웃나라인 대만만 해도 식당 가면 채식 옵션이 있고, 카페 가면 소이밀크 옵션이 있거나 아예 넛밀크(아몬드우유와 같은 견과류 우유) 가게가 있는데 한국은 이런 채식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건을 결심했다가 일상 생활을 위해 해산물까지는 어쩔 수 없이 먹기로 타협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 그래서 유통가가 나섰다···비건 도시락·비건 김밥·채식 라면까지 채식 상품 출시 릴레이 

헬로네이처의 비건 카테고리. 비건 버터, 비건 스테이크, 비건 커틀릿 등 식물성분을 사용해 만들어진 다양한 비건식품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헬로네이처 앱 화면 갈무리
헬로네이처의 비건 카테고리. 비건 버터, 비건 스테이크, 비건 커틀릿 등 식물성분을 사용해 만들어진 다양한 비건식품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헬로네이처 앱 화면 갈무리

비건 인구가 늘어나자 이들을 겨냥한 유통업계 특화 신제품도 대거 출시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식물성 고기로 만든 간편식 만두를 출시한다고 6일 밝혔다. 이 제품은 현미와 귀리, 견과류로 만든 100% 식물성 고기를 사용했다. 세븐일레븐은 12일에는 100% 식물성 콩 단백질로 만든 고기를 사용한 햄버거와 김밥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CU는 지난 5일부터 100% 순식물성 원재료를 활용해 만든 ‘채식주의 간편식 시리즈(도시락, 버거, 김밥)’를 순차적으로 내놓고 있다. 채식주의 도시락은 파스타와 단호박찜으로 심플하게 구성된 상품이다.파스타는 달걀, 우유, 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펜네(Penne)와 식물성 단백질 고기, 방울토마토, 미니 새송이버섯, 블랙올리브를 바질페이스토에 버무린 오일 파스타를 담았다.

채식주의 버거 역시 100% 순식물성 단백질 패티를 적용했으며 토핑은 토마토, 양상추를 넣었다. 번과 소스에서도 동물성 성분을 완전히 뺐다. 채식주의 김밥은 참깨밥에 햄 대신 순식물성 고기, 유부를 토핑해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그 외에도 시금치, 당근, 우엉 등을 사용했다. 대부분 고기 위주였던 편의점 음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락토 베지테리언(육류, 생선, 계란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는 단계)까지 먹는 채식라면도 등장했다. 농심은 지난 달 말 소스와 건더기에 육류를 넣지 않아 채식주의자도 즐길 수 있는 강황쌀국수볶음면을 출시했다. 농심 관계자는 “최근 채식과 건강식을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를 고려해 개발했다”며 “채식 단계 중에서 유제품을 허용하는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까지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비건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유통업체들도 비건 전용 식품관을 운영하는 등 특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헬로네이처는 지난 7월 비건존을 오픈했다. 비건 맛김치, 비건 야채스톡, 비건 요거트, 비건 빵, 콩으로 만든 햄, 비건 만두, 비건 버터, 비건 스프, 비건 크래커, 비건 아이스크림 등이 판매된다. 채소뿐 아니라 다양한 가공식품도 비건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제품이 등장하자 비건인들도 이에 몰리고 있다. 

6일 기준 위메프도 최근 두 달 기준 채식 라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74% 증가했다. 마켓커릴 비건 베이커리 매출은 지난해 하반기 대비 올 상반기 289% 증가했다. 확실히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CU가 지난 5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채식주의 간편식. /사진=BGF리테일
CU가 지난 5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채식주의 간편식. / 사진=BGF리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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