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5일 노동부에 필수유지업무 법 개선 의견 제출···“2기 경사노위서 다뤄질 가능성” 의견도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을 시작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 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4월 3일 사고가 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을 시작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 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4월 3일 사고가 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필수유지업무에 대해 사업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노동 쟁의권을 막으면서 동시에 비핵심업무라며 외주화하는 모순적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관련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일부 개정안 입법예고에서 이러한 상황의 개선을 위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 이에 노동계는 지난 5일 고용노동부에 법 개정 개선 사안 의견을 제출했다.

필수유지업무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 필수 공익사업의 업무 가운데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 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 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말한다. 노조법상 필수공익업무는 철도, 전기, 수도, 가스, 석유, 병원, 한국은행, 통신 사업 등의 업무 중 대통령령이 정한 업무로 규정한다.

이처럼 필수유지업무가 공익과 국민의 생명, 생활을 위해 중요한 만큼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를 법률로써 제한하고 있다. 노사는 필수유지업무 중 파업 참가 제한 업무와 파업 시 해당 업무의 최소 유지 인원 등을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체결해 정해야 한다. 또 사용자는 필수유지업무 노동자가 파업할 경우 파업 참가 인원의 50%를 대체인력으로 투입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필수유지업무임에도 사업장들은 자의적으로 이 업무를 외주화해 하청업체에 넘기고 있다. 필수유지업무이면서도 외주화가 되거나 노조 힘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곳은 통신, 의료(병원 하청노동자), 항공, 궤도, 발전 산업 등이 있다.

이에 노동계는 이날 고용노동부에 필수유지업무와 관련해 ILO의 권고 등 국제적 기준에 맞춰야 한다며 ▲공익사업 노동자의 쟁의권을 형해화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 삭제 ▲합리적 기준으로 최소유지업무 신설해 쟁의권과 시민권 조화 달성 ▲필수공익사업에서 대체근로 전면허용 조항 삭제 ▲긴급조정의 대상 합리적으로 축소 및 긴급조정 결렬시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직권 중재회부 결정 조항 삭제 등 노조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노동계가 이러한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 의견을 제출했지만 정부가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노동계 관계자는 “추석 뒤 시작하는 2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2기 경사노위에서 이를 다룬다는 것은 정부가 이번 개정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2기 경사노위에서 다뤄진다 해도 지금까지 경사노위에서 노동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기에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2기 경사노위에서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에 대해 다룰 지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 김용균 사망 업무도 필수유지업무면서 외주화 돼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청년 김용균 노동자의 업무도 필수유지업무였다. 그러나 발전소가 이 중요한 업무를 외주화 해 하청에 맡겼고 결국 김용균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망했다.

필수유지업무인데도 외주화가 되면서 원하청 간 책임회피 구조가 만들어지고 소통이 경직되고 끊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은 김용균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11개월 전인 2018년 1월 한국서부발전에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을 요청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낙탄을 사람이 직접 치우지 않고 고압의 물로 쏴서 처리하도록 시설을 개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서부발전은 평소 작업에서는 지휘와 감독을 하면서도 하청노동자가 원청 노동자가 아니라며 이 요청을 무시했다. 하청업체는 컨베이어벨트가 자신 소유의 설비가 아니라며 권한이 없다고 개선 요청을 회피했다.

필수유지업무의 이러한 모순은 발전 산업 뿐 아니라 모든 산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사측이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항공 산업 전반은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한다. 조종사와 객실승무원을 포함한 항공회사, 비행기지상조업을 하는 조업회사, 항공회사와 조업회사로부터 외주 하도급을 받고 있는 하청사 모두에게 필수유지업무가 적용된다.

항공사의 2차 하청사인 아시아나항공의 탑승지원을 담당하는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도 80%의 필수유지업무 비율을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는 쟁의권이 없는 상태에서 교섭 자체를 못하고 있다.

공공운수노동조합에 따르면 2018년 5월 2일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단체협약체결을 하지 못했다. 최근 사용자는 단체교섭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교섭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이 필수유지업무 제도로 노조의 힘이 실질적으로 무력한 상황임을 알기에 교섭위원들의 지위 인정조차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노조는 “단체행동권의 제약이 사실상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붕괴시키고 있다. 20대 초반의 최저임금 청년노동자들이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지켜낼 수 있는 수단이 완전히 박탈됐다. 이는 80%에 달하는 필수유지업무 비율 때문”이라며 “역설적으로 파업권이 제한되면서 장시간 불규칙한 스케줄 속에서 이용승객의 안전에 위협요소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필수유지업무 해당 산업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물었다. 또 공공의 일상생활과 노동자 권리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병원 노조 관계자는 “통일적 기준이나 합리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필수유지업무 유지율이 결정되고 있다”며 “이는 또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가 필수유지업무 협정 체결에 실패할 경우 노동위원회 위원장이 강제성을 가진 직권 중재 결정을 하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나왔다.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 부실장은 “노동위원회는 필수유지업무 산업에서 문제가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사측의 의견을 중시한다”며 “긴급조정 결렬시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직권 중재회부 결정 조항을 삭제해야한다”고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31일 ILO(국제노동기구)협약비준을 명목으로 노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서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에 대한 노동자들의 이 같은 요구를 반영하지 않았다. ILO는 2002년 정부에 철도·석유 등을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국의 필수공익사업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권고도 노조법 개정안에 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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