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 광복절 맞아 ‘노 재팬’기 1100개 설치 예정···구청 홈페이지엔 반대 글 올라와
“자발적 시민운동 의미 퇴색”···구청장 “관군·의병 따질 상황 아냐” 반박글 올렸다가 ‘삭제’

사진=서울 중구청 제공
/ 사진=서울 중구청 제공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도심 곳곳에 ‘노(보이콧) 재팬’기를 설치하겠다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발표에 ‘비합리적인 반일감정 조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 중구청은 오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태극기와 함께 일본제품 불매와 일본여행 거부를 뜻하는 노 재팬기를 가로변에 설치한다고 6일 밝혔다.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세종대로, 삼일대로, 정동길 등 관내 22개로에 노 재팬기가 총 1100개 내걸릴 예정이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에 협력·동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관이 나서서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것은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 뿐만 아니라 양심적인 시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중구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날 오전 11시 기준 노 재팬기 게재를 반대하는 글이 100여개 올라온 상태다.

여러차례 민원을 제기했다는 A씨는 “국가가 주도하는 불매운동이 될 경우, 역풍을 맞거나 향후 국가적인 여론전 시 불리하게 작용될까 우려된다”면서 “무엇보다 중구엔 한국에 호의적인 일본인 관광객분들이 오실텐데 그분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는가. 노 재팬은 민간인에게 맡겨달라”라고 글을 남겼다. A씨는 광복절을 기념하려면 차라리 독립운동가 사진이나 독립을 상징할 만한 사진을 걸어달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구청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B씨는 “중구에 외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그나마 오는 외국인도 다 내 쫓고 싶으십니까. 제발 관 주도로 오바 좀 하지마세요. 시민들이 알아서 불매할테니까”라고 지적했다.

C씨는 한국인의 식당 출입을 금지하는 일본의 극단적 사례를 한국이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님은 후하게 대접해서 보내는 게 우리 인심이듯이, 이럴 때일 수록 한국이 좋아 오는 손님들에겐 더욱 친절하게 대하는 게 수준 높은 대응법인 것 같다”면서 “중구청에서 추진하는 노 재팬 배너를 한국이 좋아 여행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보았을때, 자칫 그 분노가 일본 국민을 향하고 있다고 느낄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자발적인 운동에 지자체가 나서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지만, 만약에 굳이 해야 한다면 주어를 명확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배일·반일 감정은 자연스런 것이지만 이것이 국가 주도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국가가 배일·반일을 주도하면 결국 사회적 분위기가 국가주의로 빠져 후일 씻을 수 없는 이념적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양호 구청장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관군, 의병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반박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다.

6일 오전 11시 기준 서울 중구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노 재팬'기 설치를 반대하는 글 100여개가 올라와 있다.
6일 오전 11시 기준 서울 중구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노 재팬'기 설치를 반대하는 글 100여개가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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