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 된 ‘호황의 시대 채용’ 4050세대, 인원 감축 우려에 불안감 토로
평균 연령 ‘상향’, 임원 승진 ‘하향’ 역행 시류에 “인건비용 줄여 경쟁력 확보 지양해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최근 수년 사이 대기업 임원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여 온 가운데, 재계 2·3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 등이 임원들의 직급을 간소화하거나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이 재계를 리드하는 업체들인 만큼 이 같은 경향이 확산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인원 감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사회적 흐름을 지적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가 차원의 논의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5일 재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기존 6단계 체제였던 임원 직급을 4단계로 축소했다. 이사대우·이사·상무 등이 ‘상무’로 통합돼, ‘사장-부사장-전무-상무’ 체계로 바뀌었다. 하반기 중에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으로 나뉜 5단계 일반직 직급을 ‘사원-매니저(대리)-책임매니저(과·차·부장) 등으로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SK그룹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전무·상무 등 임원 직급을 폐지하고 직책을 호칭 대신 사용하게 했다. ‘본부장’ 또는 ‘실장’ 등으로 불리는 방식이다. 직책이 없을 경우 부사장으로 통일한다. 삼성·LG그룹은 현재 내부적으로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의 경우 일반 직급을 4단계로, LG는 3단계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부 계열사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한 사례도 있다.

임원 및 일반 직급의 간소화를 두고, 임원 진입을 앞뒀거나 갓 임원이 된 40대 후반, 50대 초반 임직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 업체들은 ‘수평적 조직문화’ ‘신속한 의사결정’ ‘창의적 조직문화’ 등을 개편의 이유로 들었지만, 결국 임직원 규모를 축소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모 그룹 4년 차 부장 A씨는 “입사 후 여느 샐러리맨과 다름없이 임원이 되고, 또 경영진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며 “임원 승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과거와 상당히 풍토가 바뀌었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는 임원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에서 직급이 간소화 될 경우, 결국 그 임원 수가 감소하고 근속이 단절될 것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A씨는 “경쟁 관문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동기들 중 극히 일부만이 임원이 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연령이 낮아지면 임원이 된다 하더라도 근속 기간이 짧아지게 된다”며 “임원 진입에 실패할 경우에도 평직원으로 재직하며 승진에 재차 도전하기 마련인데 이 기간 역시 줄어들게 된다”고 시사했다. 또 “직급 폐지·간소화 등은 결국 같은 등급의 임직원들을 대폭 늘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인원을 감소시킬 것이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소수의 생존자라 볼 수 있는 대기업 임원들이 점차 젊어지고 직급 역시 한 데 묶이게 되면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좀 더 넓게 봤을 땐 전체 조직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최근 수년간 국내 주요 기업 임원들의 면면을 보면 40·50대 비중이 높아지고, 60대 비중이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수론’이란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을 정도로 40대의 약진이 돋보였다. 기업정보 분석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10대 기업 임원들은 49세에 임명돼 54세에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 평균 연령이 42.1세이고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며 40대 후반 인구가 급증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해당 연령층의 자리는 줄어들고 인구는 늘어나는 구조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센터장)은 “기업의 임직원 직제 간소화에는 숨은 속사정이 있다”고 평가했다. 승진으로 인한 임금 상승을 억제하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영 및 비용 감소를 꾀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더불어 △기업환경·인구 구조 등의 변화 △현상 유지조차 쉽지 않은 기업환경 등을 기업들이 이 같은 선택을 하게 된 배경으로 꼽았다.

오 소장은 “고령화에 따른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령화시대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특정 연령대의 적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데, 임금 조정 등을 바탕으로 이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자리가 부족한 것이지, 해당 연령대의 업무 능력이 결코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며 “오랜 조직생활을 통해 이해도가 높고 관련 업무의 네트워크가 탄탄하게 갖춰진 이들이 그간 폭넓은 업무를 수행해 왔다면, 이들의 전문성을 살려 특정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구조가 안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기업이 인건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부가가치 창출을 낮출 수 있어 국가경제 차원에서 결코 유익한 수단이 아니다”며 “4차산업 시대 등을 맞아 마치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한데, 기업이 이를 감수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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