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보행자 친화 도시 조성 기대에 전시행정 전락 우려도
전문가들 “철저한 사전 조사·버스 연계한 대책 마련해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자전거 하이웨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은 최근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원순 시장이 콜림바이 보고카의 '시클로비아' 현장에서 보고타 시민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장면. /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자전거 하이웨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은 최근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 시장이 콜림바이 보고카의 '시클로비아' 현장에서 보고타 시민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장면. /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 철학이 담긴 ‘서울시 자전거 하이웨이(CRT)’ 계획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시가 보행자 친화 도시로 진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란 기대도 나오지만, 일각에선 자칫 실효성 없는 전시 행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서울시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자전거가 차량과 분리돼 빠르고 안전하며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 자전거만의 전용도로 시설물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박원순 시장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 없는 거리(car-free)로 운영되고 있는 콜롬비아 보고타의 시클로비아(Ciclovia) 현장을 방문해 서울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CRT 청사진을 공개했다.

박 시장이 공개한 CRT는 차량, 보행자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자전거만을 위한 별도의 전용도로 시설이다. 지상구조물이나 도로 상부 등을 활용해 캐노피형 CRT, 튜브형 CRT, 도심 속 녹지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그린카펫 CRT 등의 형태로 추진한다.

차로 높이였던 가로변 자전거 도로는 차도를 축소하고 보도높이로 조성한다. 차로와 물리적으로 분리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한강교량을 활용해 CRT를 테마가 있는 도로망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가양대교(서울식물원~하늘공원), 원효대교(여의도공원~용산가족공원), 영동대교(압구정로데오거리~서울숲) 등은 교량과 주변의 관광자원과 소풍, 나들이에 특화된 자전거도로망으로 구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CRT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올 하반기 3억원을 투입, 타당성 용역을 실시하고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개소별‧구간별로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CRT 계획은 보행자 중심 도시룰 조성하겠다는 박원순 시장 도로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프로젝트다. 과거 20~30년 간 서울시장들은 보행자 중심 시정을 하겠다고 여러 방안을 내놨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자전거 정책은 CRT 등 시설물 설치 같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지 말고 사전조사 등 소프트웨어 부분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서울시는 공급 위주 정책을 펴왔다. 시설을 만들면 성공한다고 하드웨어적인 정책을 계속 추진해왔지만 실패했다”며 “설치 장소와 규모에 따라 사람들이 얼마나 이용할지에 대한 정교한 분석 없이 단순히 편한대로 전시용으로 보기좋게 시설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것이란 생각으로 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 실정 적합 여부·CRT 필요성 의문도 제기

CRT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서울지역 자체가 산지나 언덕이 많다보니 자전거를 이용하기 다소 부적합한 자연적 여건이란 지적이다. 현재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씨(38·서울 송파구 거주)는 “베테랑 자전거 애용자들은 언덕 경사에 개의치 않지만 여성이나 초보 자전거 운전자들은 장거리나 경사도가 심한 길을 달리기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가 고속도로가 필요한 운송수단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를 자전거만으로 이동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자전거와 버스 등이 연계된 종합 교통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조언이다. 강 교수는 “자전거와 버스가 상호간에 연계돼서 교통시스템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CRT는 사실상 박원순 시장의 대권 플랜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CRT를 2년 내에 한다고 밝힌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지하철이나, 트램, 경전철 같은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CRT는 1~2년 내에 할 수 있다”며 “현재 자전거도로는 도로 옆에 있어 사람들 눈에 잘 안 띄지만 자전거 하이웨이를 통해 세종로나 종로 등 시내 중심지 공중에 조성해 놓으면 당장 전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자전거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CRT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은 나왔지만 구체적인 제반조사가 이뤄진 상황은 아니다”며 “실정에 맞는 방안인지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문정, 마곡, 항동, 위례, 고덕강일 등 지역을 생활권 자전거 특화지구로 조성한다. 각종 개발사업과 연계해 총 72km에 달하는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따릉이 대여소’도 집중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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