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을 해온 문재화 대표. 자신이 오롯이 원하는 디자인 철학을 펼쳐내기 위해 지난해 리빙 브랜드 모온을 론칭하고 오비큠을 세상에 선보였다. 모온은 그런 기다림의 과정을 겪었기에 시장과 사용자가 필요로 한다고 확신하는 디자인만을 펼쳐낸다.

사진=정택

 

모온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나요? 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삼성전자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9년간 일했어요. 모바일 부서를 거치면서 내가 열과 성을 쏟은 디자인이 기술의 발달과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회의감이 많이 들었죠. ‘이런 휘발성 높은 아이템 말고 다른 것을 하자’고 결심한 뒤, 2012년 중소기업의 디자인을 컨설팅해주는 알앤디 플러스를 설립했 고, 작년 문재화의 첫 브랜드인 모온을 론칭하게 됐어요.

지금의 문재화 대표는 어떤 디자이너인가요? 저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온전한 디자이너에서 사업가로 가는 과정을 걷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디자이너와 사업가의 가장 큰 차이를 짚어준다면요. 디자인이 세상의 호응을 얻고 결과적으로 대중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스타일 외에도 다양한 면을 고려해야 해요. 흔히 많은 디자이너가 먼저 이미지를 만든 뒤 가격을 정하는데 사업가 마인드를 갖춘 디자이너라면 먼저 가격을 정하고 그 가격에 맞는 선에서 최선의 디자인을 해야 하죠. 모온 설립 이전에도 소화기와 우산 등 많은 제품을 디자인했 지만 디자인적 욕심만 추구했으니, 어쩌면 모온이 사업가적 마인드로 디자인에 접근한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디자인 샘플 작업을 위한 작업실. 벽에 다양한 공구들이 걸려 있다. / 사진=정택
디자인 샘플 작업을 위한 작업실. 벽에 다양한 공구들이 걸려 있다. / 사진=정택

 

컨설팅을 하면서 쌓은 경험치가 모온이라는 브랜드를 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겠네요. 일단 브랜드 컨설팅을 진행하게 되면 그 회사의 모든 노하우가 저에게 전수되면서 자연스레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의 깊이가 엄청나게 넓어져요. 그러니 앞으로도 돈과는 별개로 내가 알지 못했던 영역이나 흥미를 끄는 아이템이라면 계속해서 컨설팅 작업은 지속하고 싶어요.

많은 브랜드의 컨설팅 작업을 해왔지만 정작 자기 브랜드를 만들 때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회사를 브랜딩하면서 명확한 솔루션을 던져도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사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어요. 애착이 남다르니까 객관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죠. 그래서 오히려 모온을 만들 때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름을 정할 때부터 심플했죠. 제가 성씨(MOON)에 대한 애착이 많은데 팀원과 이야기를 하던 중 ‘문을 두 줄로 쓰면 어떻겠나’라는 의견이 나왔어 요. 로고로 사용했을 때 시각적인 임팩트도 강하고 발음도 명확한데 이런 이름이 아직 상표 등록이 안 돼 있다는 것을 알고 순식간에 결정했죠.

모온의 첫 라인업이 오비큠(obicuum)인데요. 왜 하필 청소기였나요? 청소기를 아이템으로 잡을 때도, 청소기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열망 같은 건 없었어요. 컨설 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시장의 흐름과 트렌드를 읽게 되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중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요. 요즘 인테리어 트렌드는 미니멀함과 모던함 이잖아요? 그런데 청소기는 아직도 그렇지 않으니, 흔히 옷방이나 베란다 등에 숨겨놓는 거예요. 디자인적인 면뿐 아니라 사용성에서도 개선할 점이 많고. 자연스레 첫 타자로 정해졌죠. 시장성 면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전제품군에서 몇 안 되는, 지속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장률을 보이는 아이템이기도 하고요.

‘메종&오브제 파리 2019’에서 수출이라는 큰 성과를 이뤄냈어요. 예상했나요? 오비큠은 사전 제작 단계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어요. 사실 이전에 제가 디자인했던 많은 제품이 수출까지 진행되지 못했던 이유가, 관세 등 수출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했기 때문에 애초에 수출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점이에요. 또 하나 바이어들에게 이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전자제품에 흔하게 쓰이지 않는 컬러를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오비큠의 컬러를 선택할 때 제작사가 난색을 표했어요. 저 또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면 새로운 디자인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죠. 수출에 성공한 것은 이러한 도전에 대한 응답을 받은 셈이죠. 굉장히 짜릿했어요.

모온의 다음 라인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죠? 아이템은 정해진 상태예 요. 스팀다리미죠. 많은 직장인이 아침에 빠르게 옷을 다릴 수 있기를 원해요. 기존의 스팀다리미는 사용은 편리하지만 지나치게 무겁고, 요즘 출시되는 소형 스팀다 리미는 그 사용법을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직관적인 디자인이 아니에요. 모온은 이 점을 개선해 올 12월 출시 예정으로 개발을 준비 중입니다.

모온의 디자인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갈까요? 트렌디한 디자인의 가전을 과연 10년 동안 한 공간에 둘 수 있을까 생각해보세요. 1년만 써도 되는 단발성 아이템은 물론 유행을 따라가야겠죠. 하지만 가전은 달라요. 타임리스한 가치를 지녀야 하죠. 모온의 제품은 일종의 가구이자 오브제이기 때문에 심플한 디자인이면 돼요. 오히려 10년이 지나도 트렌디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죠.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한발짝 정도만 앞서나가는,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1 디자인 샘플 작업을 위한 작업실. 벽에 다양한 공구들이 걸려 있다. 2 그 자체로 오브제에 가까운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오비큠. 청소기 하면 흔히 떠오르는 컬러 조합을 벗어 던지고 화이트 베이스의 공간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피치선셋, 마쉬멜로우, 파스텔씨 컬러. 3 조도가 낮은 공간에서 주로 작업하는 문재화 대표. 조형미를 가진 화병과 장미 생화, 싱싱한 애프리콧을 한입 베어 문 듯
1 디자인 샘플 작업을 위한 작업실. 벽에 다양한 공구들이 걸려 있다. 2 그 자체로 오브제에 가까운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오비큠. 청소기 하면 흔히 떠오르는 컬러 조합을 벗어 던지고 화이트 베이스의 공간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피치선셋, 마쉬멜로우, 파스텔씨 컬러. 3 조도가 낮은 공간에서 주로 작업하는 문재화 대표. 조형미를 가진 화병과 장미 생화, 싱싱한 애프리콧을 한입 베어 문 듯/ 사진=정택

 

리빙센스 2019년 5월호

https://www.smlounge.co.kr/living

기획 권새봄 기자 사진 정택 취재협조 모온(mo-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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