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계약직 모집에 ‘방문접수’ 요구···전문가들 “채용공정화법에도 어긋나”

일부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에 한해 서류제출을 방문접수로 요구하고 있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을 내세우며 공기업·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하는 데 애쓰는 가운데, 서울 서초구가 계약직 직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채용서류를 방문접수하도록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통상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취업 서류는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공고 모집에 명시된 증명서를 채용 홈페이지 혹은 이메일로 접수하면 된다. 하지만 비정규직 지원자에게 방문접수를 요구하며 지원 모집에서 정규직과 차별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다. 

21일 기자가 서울 서초구의 계약직 채용 공고를 확인한 결과, 현재 채용 진행 중인 초단기간 계약직 직원 채용 공고에 ‘방문접수 및 대리접수(우편 및 인터넷 접수 불가)’라고 명시돼 있다. 

초단기간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서초구 관계자는 “기관이 마련한 조례 때문”이라며 “방문접수 외에 우편이나 이메일 접수는 모두 금지하고 있어 방문접수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접수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례 때문”이라고 했고, 비정규직만 방문접수를 받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서초구 기간제근로자 관리 규정 및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에 따르면, 서초구는 기간제근로자 채용을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하며 수집된 개인정보는 채용을 위한 서류심사 및 면접, 연락을 위해서만 사용하기 위해 개인 정보동의서를 서면으로 받고 있다.

이메일, 팩스 접수 시 개인정보 유출이 될 수 있어 기간제 근로자의 채용 공고가 7일인 점을 감안해 우편접수 시 누락이 발생할 수 있어 방문접수로만 기간제 채용 원서를 받고 있다는 게 구청의 논리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관에서 마련한 지침으로 계약직원 모집은 방문접수로만 받고 있다”며 “지원 접수에 필요한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인터넷 접수도 서류 검토는 가능하지 않냐고 묻자 “그래도 지침상 방문접수로만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관의 채용 방식은 채용공정화법에도 어긋난다. 지난 2015년 1월부터 시행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제7조에 따르면, 구인자가 구직자의 채용서류를 홈페이지나 전자우편으로 받도록 노력하라고 명시돼 있다. 구인자는 채용서류를 전자우편 등으로 받은 경우에는 구직자에게 접수된 사실을 문자전송, 전자우편, 팩스 등으로 알려야 한다.

서초구 모집 공고를 통해 방과 후 아동돌보미 업무에 지원했던 이아무개씨(52)는 “정규직원들은 블라인드 채용이라며 개인정보, 각종 증명서를 비공개로 접수받고 있는데 비정규직은 채용공고에 방문접수라고 명시해 차별을 두고 있다”며 “임금이나 업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는데 지원 접수부터 차별을 두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전시관련 보조직에 지원했던 최아무개씨(42)는 “기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모두, 여러 부 프린트해서 직접 기관에 방문해 제출했다”며 “서류 제출 당시 기관 직원들이 서류를 확인하면서 여러 가지 개인 질문을 했다. 그때 당시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면접을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구 산하기관 직원은 “계약직의 경우 오래 일하다보면 재계약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취업 의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라며 “계약직 지원자 중에선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있고 해서 방문 접수를 하려는 것이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 민간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도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유독 비정규직에게만 기존 원칙에서 제외시켜 차별을 두고 있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넘어서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안되고 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결국 이러한 차별이 채용 시장에서 비정규직의 악영향을 부추기는 것이다. 비정규직들을 위한 차별이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법학교수는 “정부가 고용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드려 공공기관 정규직화 정책을 펴고 있는 건데 오히려 비정규직들이 차별을 받는 것은 정부정책 취지와도 어긋난다”며 “공공기관 비정규직 비율이 줄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나 정부가 신규채용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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