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1억원 한도까지 대출, 연 이자 1.2%···홍보 제대로 안돼 중개인들도 잘 몰라
계약과정 번거로워 집주인들이 꺼려해···“집주인에게 전혀 불이익 없어”

정부가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중소기업 전월세자금대출’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잡한 절차에 집주인들이 이 제도를 꺼려하고 있어서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부가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중소기업 전월세자금대출’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잡한 절차에 집주인들이 이 제도를 꺼려하고 있어서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한 중소 광고회사에 다니는 김수연(27)씨는 현재 서울 동대문구 소재 보증금 2000만원, 월세 40만원 짜리 원룸에 거주하고 있다. 지방에 살던 김씨가 2년 전 서울에 첫 직장을 구하면서 급하게 마련한 집이다. 7평 남짓한 원룸에 지금까지 월세로 지출한 금액은 관리비를 포함해 1000만원이 넘는다. 김씨는 최근 친구에게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1억원 짜리 전셋집을 월 이자 10만원만 내면 거주할 수 있는 전세자금대출제도가 있다는 것. 김씨는 거주비를 4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반가우면서도 그동안 이 제도를 몰라 지출했던 비용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 판교의 한 중소 게임업체를 다니는 오병세(31)씨는 최근 이사를 위해 주변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매번 허탕을 치고 있다.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한 매물이 있느냐는 물음에 부동산 중개인들은 ‘찾기 어렵다’는 답변뿐이었다. 오씨는 “집주인들이 전세자금대출 제도가 번거롭기 때문에 다들 꺼려한다더라”며 “3주가 넘게 알아봤지만 별 소득이 없어 이제는 그냥 포기해야하나 생각이 든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5일 국토교통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중소기업 전월세자금대출’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도입된 이 제도는 연수입 3500만원 이하 중소기업 취업 청년(만 34세 이하, 현역 복무 시 만 39세 이하)들에게 제공하는 전·월세 보증금 대출이다.

대출한도는 최대 1억원, 대출금리는 연 1.2%다. 서울보증보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이 보증을 서고 은행에서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만약 전세보증금 1억원 짜리 집을 계약한다면 원금을 갚을 필요 없이 월 10만원의 이자비용만 은행에 지불하면 된다. 대출 기간은 최초 2년에, 최장 10년까지 총 4번 연장할 수 있다. 청년들은 ‘주거 불안 해소’와 ‘목돈 준비’라는 함께 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입된 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활성화 되지 않고 있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청년들은 물론 해당 제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중개인을 찾기도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전세자금대출 이용이 저조한 이유는 집주인들이 이 제도를 꺼려하고 있어서다. 중소기업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한 집은 기본적으로 융자가 없어야 한다. 여기에 일반 계약과정보다 복잡하다.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집주인의 동의가 필수다. HUG는 집주인 동의 없이는 보증서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 이것은 대출금의 안전한 회수를 위한 조치다. 만약 집주인이 세입자의 대출 사실을 모르고 보증금을 전부 세입자에게 돌려줬을 경우 대출금 회수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기관에서는 집주인에게 질권설정 통지서를 보내게 된다. 질권설정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는 표시행위다.

서울 동대문구의 공인중개사는 “대부분의 집주인은 질권설정 통지서를 받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며 “용어에 대한 선입견과 번거로운 대출 동의 절차에 인해 집 계약을 거부하는 사례도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집주인들에게 전혀 피해가 없다는 의견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며 “이는 집주인이 동의한다면 어떤 법적인 책임도 질 필요가 없고 계약 만료 시 임차인의 대출금(전세보증금)만 은행에 반환하면 되고 그 즉시 질권은 소멸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입자가 대출 원금·이자를 갚지 않을 경우 보증 기관이 일단 은행에 대출금을 물어주기 때문에 집주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감원에서는 전세 대출 때 집주인 피해가 없다는 전세자금대출 표준 안내서를 만들었다. 집주인들이 세입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제도를 이해하지 못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을 우려해 거부하는 것을 방지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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