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승객 “일반 택시와 다를 바 없어”···“더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 같아”
우리나라 1호 청각장애 택시기사 이대호씨 “승객들이 감사인사 할 때 가장 기뻐”
“현대차가 개발한 청각장애 지원시스템 덕에 안전운행 도움”···3년 뒤 개인택시 운행이 다음 목표

 

말은 종종 소통을 방해한다. 진심을 왜곡하고 생각을 꾸며낸다. 마음을 흘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기에는 언어의 여정이 너무나 길다. 문법체계라는 논리적 환상이 진심을 멋대로 마름질하고, 성대를 거쳐 먹먹히 퍼지는 마음은, 상대방 귓바퀴를 파고들기도 전에 이미 오염된다. 말은 직관적이지 못하고 개념적이며, 투명한 대신 뿌옇고, 본능적인 대신 이성적이다. 우리는 종종 언어 속에서 길을 잃는다.

완전한 침묵이 찾아올 때 진정한 소통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지난 21일 서울시 강서구 신신기업 휴게실에서 우리나라 청각장애 1호 택시기사 이대호(52·남)씨를 만났다. 오전 9시가 15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야간운전을 마치고 휴게실 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씨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는 애써 웃어보였지만 입꼬리를 끝까지 올리진 못했다. 전날 오후 7시부터 밤을 새워 운전했다고 한다. 수화통역사가 양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피곤하시죠?라고 물었고, 이씨는 통역사에게 미소 띤 얼굴로 “조금 피곤하다”고 전했다. 언어가 단절되니 두 눈으로 이씨의 감정을 샅샅이 훑을 수밖에 없었다. 무테 안경 너머의 눈빛에는 피곤함과 반가움, 그리고 경계심이 뒤섞인 듯 했다. 사전 협의된 내용이었음에도 이씨에게 조심스레 취재 의도와 내용을 전달했다. 이씨의 택시 안에서 1시간가량 이씨와 손님들의 반응을 엿보기로 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청각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택시영업을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의 운전면허가 허용된지는 오래지만, 2종보통까지가 한계였다. 1종보통 이상의 면허가 필요한 택시영업은 불가능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지속적으로 1종보통 면허 획득 허용을 요청했고, 2010년 6월 개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적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사회적 장벽이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 탄생을 가로막았고, 지난해 8월에서야 8년 만에 첫 청각장애 택시기사가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이씨가 운전면허를 취득한 시점으로부터는 25년 만이다.

우리나라 1호 청각장애 택시기사 이대호(52)씨와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신신기업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시사저널e

 

이씨는 “교회에서 식사하는 중에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눴다. 수입이 괜찮은 것 같았지만 농인(聾人)이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냥 생각만 하다 잊고 있었는데 ‘고요한 택시(스타트업 코엑터스가 개발한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승객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와 인연이 닿아 택시기사가 될 수 있었다”고 손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여기에 현대자동차는 이씨의 택시에 청각장애인용 안전운전 시스템을 더했다. 2017년 사내 기술개발 경연대회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실제 택시에까지 적용됐다. 운전대의 진동과 헤드업디스플레이(HUD)를 통해 청각 정보를 시각과 촉각 정보로 치환한다. 내비게이션이 차량 전면 유리에 떠오르고, 주변의 차가 경적을 울리면 운전대가 반응하는 형식이다. 이씨는 “이 기술이 실제 안전운전에 많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 지원 시스템. / 사진=현대차

오전 9시 30분경 이씨와 함께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섰다. 당초 이씨의 조수석에서 승객을 함께 맞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타있는 택시는 합승 탓에 사람들이 꺼려했고,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에는 더더욱 손사래를 쳤다. 갈 길 바쁜 사람들이 타는 택시에는 대화를 위한 여유가 없었다. 결국 또 다른 택시 한 대에 올라타 이씨의 택시를 뒤에서 추적했다.

이씨의 택시 뒤에서 승객들의 탑승을 기다렸으나 손님을 찾기 어려웠다. 15분 정도 기다리다 시간이 없어 결국 택시에서 내렸다. 길거리에서 즉석으로 시민들을 섭외했다. 목적지를 묻고 태워다 주는 대신 인터뷰를 요청했다. 운 좋게도 택시에서 내려 처음 만난 시민은 ‘조용한 택시’에 대해 알고 있었다. SNS(사회연결망서비스)를 통해 접했다고 했다.

김가현(20·여)씨는 올해 갓 스무살이 됐다.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 김씨는 강남의 한 음식점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김씨가 택시에 올라타자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목적지를 태블릿에 입력해달라고 안내 음성이 나왔다. 김씨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소신있게 답했다.

김씨는 “청각 장애인분이 운전하는 게 신기하고 멋졌다. 한 번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반 택시와 다른 점은 하나도 못 느끼겠고 거부감도 전혀 없다”며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오래한 덕분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이대호씨가 운행하는 택시를 이용한 김가현씨. / 사진=시사저널e

 

김씨에게 청각장애 택시기사를 위한 안전기술이 적용됐다고 설명하자 김씨는 “이런 기술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서 진로도 이쪽으로 정하고 있다. 지금 대학교 전공도 기계공학과로 정했다”며 “불편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고, 이 기술도 상용화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내리기 전 태블릿을 통해 ‘기사님 파이팅’이라고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대호 기사는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며 감사를 표했다.

두 번째 승객으로는 IT업계에 종사하는 장정호(42·남)씨가 택시에 올라탔다. 우연찮게도 두 번째 승객 역시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장씨는 지난 2년간 장애를 가진 교통약자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이씨가 운전하는 택시에 대해 “일반 택시와 전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겠다. 현재 무인자동차 개발이 한참인데, 이런 기술이 나와 흥미롭다고 생각한다”며 “더 안전하게 운전하시는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지난 21일 이대호(52)씨가 운행한 택시를 이용한 장정호씨. / 사진=시사저널e

 

2008년도 경찰청과 도로교통안전공단, 한림대학교가 합동으로 조사하여 발표한 연구용역 ‘청각장애인 운전면허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청각장애인의 교통발생 사고율은 1.2%에 불과하다. 당시 운전면혀 소지자 7705명 중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96건 뿐이었다. 일반인 전체 교통사고 발생 빈도가 0.86%(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수 2468만1440명/ 교통사고 발생건수 21만1662건)인 것을 고려하면 수치상 큰 차이가 없었다.

장씨는 “장애가 운전하는데 걸림돌이 될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IT업계에서 일하고 또 대중교통 분야를 다루다 보니 기술적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다만 이걸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넘쳤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이런 택시가 있다고 추천하고 싶다. 운전도 차분하게 하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장씨는 “내 의견이 대중적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어르신들이 탔을 때 불편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이건 익숙함의 차이인 것 같다”고 했다.

두 명의 승객을 이동시키고 다시 차고지로 돌아왔다. 어느새 눈발이 날렸고, 다시 처음 만났던 휴게실로 들어가 난로를 가운데에 두고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이대호씨는 광고영상이 화제가 된 이후 알아보는 사람이 많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많이 알아본다. 찰칵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면 손님들이 사진을 몰래 많이 찍는다. 그럼 기분이 좋다. 팁을 주시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이씨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표정이 한결 편해보였다. 지친 기색은 여전했지만 어색함은 확연히 누그러진 듯했다.

장정호(42)씨가 택시에 올라타는 모습. / 사진=시사저널e

 

운전을 하며 위험한 순간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이씨는 “택시들이 위험하다. 갑작스레 끼어들고 난폭운전을 한다. 처음엔 위험하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며 “그럴 때 현대차가 개발한 보조 시스템이 많이 도움이 된다. 운전대 진동과 불빛이 미리 경고해 준다”고 말했다. 이어 “승객들 역시 뒷자리에 앉아 핸드폰만 바라본다. 불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하차할 때 손님들이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반대로 가장 기분이 나쁠 때는 “택시에 안자마자 바로 내려버릴 때”라고 했다. 이씨는 청각장애인이기 전에, 택시기사로서 존중과 인정받을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이씨의 다음 목표는 개인택시다. 개인택시를 몰기 위해서는 3년간 무사고로 법인택시를 운전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애인 등록현황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청각장애인은 32만2000명이다. 그중 극히 일부인 12명이 전국에서 택시기사로 운행하고 있다. 이씨만 하더라도 운전경력 25년에 차를 8대나 바꾼 베테랑인데, 이제야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 3년 뒤 이들 중에서 첫 개인택시 기사가 탄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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