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가능성 운용사는 알았지만 투자자는 몰라…금융당국, 시장 신뢰 위해선 정보비대칭성 해결 고민해야

중국발 악재가 국내 증권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총 11개 국내 기관이 투자한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 자회사의 채권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로 귀결됐다. CERCG의 자구안이 남아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투입된 자금 1650억원 가량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이번 사태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큰 손실을 입다보니 자연스레 이들에 조명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 여부와 배임 가능성을 두고 증권사간 법적 다툼에 관심이 모이는 모양새다. A증권사가 B증권사에 소송을 걸고, B증권사가 C증권사 직원을 고소하는 등 물고 물리는 다툼이 흥미를 끄는 까닭이다.

물론 해당 사태가 누구의 잘못으로 발생했는 지, 증권사간 구두 약속이 거래에 해당하는 지 등은 이번 문제를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는 개인 투자자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투자 손실의 범주보다는 투자 피해 영역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취재 중 만난 한 투자자는 해당 ABCP를 담고 있는 펀드에 투자했다. 문제는 투자 시점이었다. 이 투자자는 5월 25일(금요일)과 28일(월요일)에 해당 펀드를 매입했다. 그런데 해당 ABCP의 부도 가능성이 불거진 시점은 5월 17일 미국 블룸버그통신 보도에서였다. 당시 블룸버그는 CERCG가 보증한 달러화 채권이 만기일인 5월 11일까지 원금지급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국내 증권사들이 매입한 ABCP도 연쇄부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같은 달 18일에는 ABCP에 신용평가를 내린 나이스신용평가가 이를 인용해 마켓코멘트를 내놨다.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CERCG가 상환유예기간(5월 25일)까지 원금지급에 대한 지급보증 의무를 다할 것인지를 지켜봤다고 했다. 원금지급이 될 지, 안 될 지 섣불리 판단해버리면 되려 투자자 혼란을 초래한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이 운용사는 29일이 되어서야 24곳의 판매사 관계자들에게 ‘부실 자산 발생 개요’에 대한 보고서와 이 펀드의 환매 연기 및 추가 설정 제한 공문을 배포했다.

이 투자자는 투자 당시 펀드의 자산 일부가 부도될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 지 못했다. 펀드 매수와 관련해 어떤 고지를 받지도 못했다. 그나마 28일에 주문한 펀드가 매수처리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 투자자는 단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위해 매입한 펀드에서 단 2거래일만에 3%가 넘는 손실을 입었다. 5월 21일 3779억원었던 해당 펀드 설정액은 5월 28일 3990억원으로 210억원 가량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억울함을 느끼는 투자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이번 사안에 대해 더욱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기간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금감원에 여러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답이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고 했다. 뚜렷하게 답을 내놓기가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재발 방지 약속과 정보비대칭성 해결 등 대안에 대한 고민은 내놔야 한다. 그래야 향후 더 큰 투자자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자본시장 신뢰가 쌓인다. ABCP 부도 사태에 가려진 일반 투자자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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