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관계된 기업 재취업은 보은성일 수 있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 모습. /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과 산업은행 등 민간은행과 민간회사에 감독과 대출 등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들이 여전히 낙하산 관행을 고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한 고위급 임원 상당수가 금융사나 일반 거래기업에 퇴직과 함께 재취업한 것이다. 보은성 재취업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이 퇴직을 앞둔 고위 임원들의 경력 관리를 통해 재취업 규정을 피해간 의혹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민간기업에 취업하려면 퇴직 전 5년 동안 했던 일과 업무연관성이 없어야 하지만 금감원이 퇴직을 앞둔 직원을 퇴직 전 5년 동안 비협업부서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취업 제한 법망을 피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번 의혹은 국회 정무위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내놨다. 2010년 이후 재취업 심사를 받은 금감원 퇴직자 77명 중 취업심사 대상 기간 내에 금융기관과 업무연관성이 없는 비현업부서(총무국, 기획조정국, 거시분석국, 금융교육국 국제협력국 등)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경력관리를 받은 의혹을 받는 직원만 65명이다.

65명 중 50명은 금감원의 감독대상 기관인 은행, 보험사, 카드사 등에 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에 따르면 경력세탁 후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4급 이상 금감원 직원은 본인이 5년 이내 근무했던 부서와 업무 연관성이 있는 금융기관 등에 3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2014년 말 금감원 부국장으로 퇴직한 김모씨는 퇴직 3달 만에 A증권사 상무로 취업했다. 올해 2월 금감원 금융혁신국에 근무하다 퇴직한 신모씨는 최근 B은행 상임감사위원에 취직했다. 두 사람 모두 증권사와 은행업무와 관련한 직종에 오랫동안 몸 담았다. 김모씨는 김씨의 5년 전 업무 기록을 보면 증권검사국 등 증권사 감독 경력만 8년을 지냈다. 신모씨는 2011년 은행서비스총괄국에서 근무하는 등 은행 유관 업무에 종사했다.

하지만 이들은 퇴직 전 5년 동안 증권사 감독 업무와 은행과 무관한 총무국 등 비현업 부서를 거쳤다는 이유로 재취업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예금보험공사,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서민금융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금감원뿐 아니라 산업은행의 낙하산 관행도 여전했다. 산업은행 고위퇴직자들이 이 은행과 대출계약을 맺은 회사에 대거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산업은행 고위퇴직자 가운데 28명이 산업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각 업체의 재무담당이사, 감사, 본부장뿐만 아니라 부사장이나 대표이사 등 고위직 자리로도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 고위퇴직자가 옮긴 28개 업체 가운데 20곳은 여전히 산업은행과 대출계약을 맺고 있었다. 대출 잔액은 총 1조3828억원에 달했다.

주요 재취업 사유를 보면 ‘투자자 및 대주단으로서의 권리 보호 차원’이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주주로서 관리·감독 필요성’(5명), ‘거래기업 요청에 대응’(4명) 순이다. 이에 산업은행은 자료에서 “2016년 10월 31일 혁신안 발표 이후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재취업을 전면 금지, 구조조정 사유에 따른 신규 재취업은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고위퇴직자의 재취업이 투·출자 회사에 대한 감시와 경영 투명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지속해서 이뤄져 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등 여러 사례를 보면 이러한 고위급 인사 재취업이 그 기업에 대한 감시와 경영 관리로 이어지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의원은 “산업은행의 퇴직 임직원이 대출계약을 맺은 기업에 재취업하는 것은 보은성으로 보일 수 있다”면서 “국책은행으로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취업 사유를 구조조정에 한정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산업은행 고위 퇴직자의 재취업 관행이 산은 출신 인사들의 전문성과 투·출자 회사에 대한 감시 및 경영 투명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졌다지만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서 제 역할을 못 한 채 퇴직자의 일자리 보장에 그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기구나 국책은행의 고위급 인사를 영입한다는 것을 금융사나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보는 것”이라며 “이런 관행이 이어지지 않도록 두 기관과 민간기업이 신경 써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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