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등 외교문제 북·미 간 담판내기 어려워…전문가들 “중재자 역할로 북·미 신뢰도 쌓아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아세안지역안보 포럼(ARF) 참석차 시간차를 두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가운데 북미 접촉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는 연내 종전선언 완료와 한반도 비핵화 안착을 위해 이르면 8월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목표로 설정하고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재를 넘어 촉매제 역할에 도입할 전망이다.

북미는 지난달 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고위급회담 이후 비핵화 후속협상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등 대화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미국 정부는 오는 3~4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RF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 측과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RF 외교장관회의 등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연쇄회의를 계기로 한 북미 간 접촉 가능성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많은 파트너와 만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안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ARF에서 계획된 북미 양자 회담 일정은 없다. 다만 미 국무부는 “이번 ARF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한 우리의 공유된 책무를 논의할 것이다”고 밝히면서 북한 측과 ARF 회의장에서 교류할 가능성은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폼페이오 장관과 리용호 외무상의 양자 회동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비핵화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핵문제와 관련한 북한 측의 핵심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데, 리용호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이 회동한다고 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폼페이오 장관과 리용호 외무상 간 회담이 이뤄진 상황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을 언제 재개할지만 합의해도 상당한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ARF에서 양국이 접촉하지 않는다면 향후 실무협상은 더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 정부 중재자 역할로 ARF 통해 종전선언 동력 찾을까

정부는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북·미·중 3국 간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은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종전선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장성급 회담에서도 종전선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북측 수석대표로 나온 안익산 중장은 “남측을 흔들어 종전선언 문제를 추진하려 한다고 보도하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북한은 최근 미군 유해 55구 송환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에 종전선언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지만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김정은 정권의 체제보장과 제재완화나 해제의 시기가 앞당겨 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반해 미국은 확실한 북핵 폐기 등 비핵화와 관련한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움직임이 공개되면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다만 당초 중국이 배제된 가운데 종전선언이 추진되는 듯 했지만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위원이 지난달 중순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하고 콩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북한을 방문해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가져 종전선언 참여국에 중국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남·북·미·중 외교담당이 한자리에 모이는 ARF에서 적절한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ARF는 중요한 외교 무대여서 북미 양자회담 가능성은 크다. 다만 회담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양자회담이 진행되기 전 양측 입장을 분명이 파악하고 서로의 시각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며 “강경화 장관이 ARF에서 북한과 미국에게 비핵화 문제 등 외교문제를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조우한다면 우리 정부는 최적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우리 정부는 ARF를 통해 단순히 중재자가 아닌 양국의 관계를 이끌어 나갈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 자체는 북미가 담판내기 쉽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중재자로 개입해 양국에 관련 사안을 지시한다면 북미가 만나도 편하게 대화가 가능케 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정부는 양국으로부터 신뢰도를 쌓고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큰 밑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남북미 3국과 중국의 종전선언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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