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시험 강화는 줄 세우기 위한 수단될 수 있어…채용 유연성 잃지 말아야

이른바 ‘은행 고시’가 부활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채용비리 예방법으로 필기시험의 전면 도입을 제시했다. 은행들은 채용비리라는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당사자이기에 당국이 제시한 모범규준안을 성실히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심 걱정이 많다. 획일화된 채용 절차가 자칫 급변하는 은행권에 불편한 옷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있는데 현 모범규준안이 각 은행에 필요한 인재 영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융당국의 채용비리 대안이 은행권에 맞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고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확정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자는 게 이번 모범규준안의 골자다. 내용을 보면 올해 시끄러웠던 채용비리를 차단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임직원 추천제를 폐지했고, 성별·출신·학교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다. 특히 은행들이 필기시험을 도입하도록 규정했다.

물론 필기시험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은행권은 다른 입장을 말한다. 한 은행권 임원은 필기시험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채용비리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까지 나온 상황이다. 은행이 이 모범규준안에 적힌 내용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또 구설수에 오른다. 결국 필기시험 등 확실한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 채용 과정은 모두 축소될 것이다.”

이 은행 관계자의 말은 모범규준안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아니다. 은행이 당국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은행이 채용에 다양성과 유연성을 잃고 경직됐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고학력 지원자들도 은행 필기시험에 목 매는 시절이라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채용에 필기시험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면 할수록 은행 입사는 지방대학 출신 지원자나 교육 여건이 나빴던 지원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기시험을 폐지했던 은행도 있었다.

이번에 채용에 논술을 폐지한 은행도 나왔다. ‘의혹 받을 만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은행은 채용 전 과정을 외부 업체에 위탁했다. 지원자의 성실성을 점수화하는 것에 대해선 은행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객관성에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항상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문제가 될 것을 미리 예상해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번 채용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은행권에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은행권은 급변한다. 필기시험 강화는 이 변화에 어울리지 못하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목소리다.

은행고시는 오히려 은행이 원하지 않는 채용 관문이다. 필기시험은 지원자를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합법적으로 금수저만을 위한 채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 급하기 갈 이유가 없다. 채용 정상화를 위해 은행권과 더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은행권에 바람직한 모범규준안을 재정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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