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G마켓, 인터파크와 같은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있다. ‘옥류’와 ‘만물상’이다. 옥류는 북한 내부 인트라넷을 이용해 식품, 화장품, 의약품, 가구 등을 판매한다. 북한 주민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휴대폰을 통해 옥류에서 상품을 산다. 이 사이트를 통해 영일식당, 금성식품공장 등 유명 북한 식당과 공장에서 판매하는 상품도 살 수 있다. 이 사이트를 이용해 공장들은 인기품목과 우수품목을 홍보한다.
2016년 개통한 전자상거래 사이트 만물상은 내부 인트라넷 망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통 1년 만에 32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여기서는 옷, 신발, 휴대전화 등을 판다.
김일경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신북방팀 남북경협 프로젝트 매니저는 “북한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크다. 북한의 시장체제는 생각보다 더 발달돼 있다”며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고 북한 시장이 개방되면 우리 기업도 만물상 등을 통해 상품을 팔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국제적 대북제재가 풀릴 경우 남북경협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경협은 남과 북 모두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고 기업들도 활발히 경협에 나설 수 있다. 남북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경협으로 제조업과 ICT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 경협, 남북 산업 모두 도움 주는 방향 추진해야…“北 제조업 육성 필요”
남과 북이 상생하는 경협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 북한이 추구하는 산업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스스로 밝힌 정책 목표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양측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경협 효과도 커진다.
최근 북한 신년사에 나타난 경제 분야 정책목표는 제조업 우선, 과학기술 혁신, 인민생활 향상 등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제조업 육성을 통한 북한의 산업화가 우선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홍열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북한의 경제목표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지만 가장 일관되게 추진하는 산업정책은 제조업 우선과 과학기술의 생산현장 접목, 금속 화학 등 중간재 생산의 보장”이라며 “이러한 정책은 특히 소비재, 최종재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산업적 지원은 제조업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구조는 한국경제의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 준다”며 “산업구조 고도화가 지체되면서 현재 한국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모순의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경협 과정에서 한국은 북한의 제조업 발전을 지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과잉된 제조업 분야가 북한으로 이전할 수 있다”며 “관련 제조업 범위에는 의류, 식품 임가공 뿐 아니라 전기·전자산업과 금속·화학 공업 분야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산업이 빨리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집약적 제조업 발전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관련 제품의 수출을 늘려야 한다. 여기에는 기계류, 건설자재, 전기·전자제품, 의류, 식료품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 경제가 성장하면 한국 기업들이 생산한 소재 부품이나 기계류도 북한에서 수요가 늘 것”이라며 “경협 과정에서 남북은 효율적인 분업 구조를 구축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남북경협이 북한 제조 산업 자체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북한 개발구 내 기업소에 한국 기업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남북 합작기업 설립 등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교수는 “경협 과정은 기존 개성공단 사업과 달리 북한의 제조업 자체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해야한다”며 “이를 위해 북한 개발구의 인프라 및 생산 설비를 정비, 확충해야 한다. 또 개발구 내 기업소에 지분투자 형식으로 자본과 기술을 제공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단계에서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남북한 합작기업 설립도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재원으로 공공기금, 재벌협력기금, 채권발행 뿐 아니라 한국 주도로 동아시아산업개발기금 등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북한 지역에서 남북이 합작해 만든 제품을 수출할 때 한국과 FTA를 맺은 교역국에 한국 제품과 같은 ‘관세 인하 효과’를 갖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익성 동덕여대 독일어과 교수에 따르면, 독일은 통일 전 내독거래(Innerdeutsche Handel)를 통해 동·서독 간 거래를 실행했다. 이로 인해 당시 동독상품은 EU 관세법·대외 무역법에 비적용 대상으로 부가가치세 면제나 감면혜택을 받았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유럽공동체(EC)로부터 동독상품을 독일 상품으로 인정받아 서유럽시장에서 관세 없이 판매가 가능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내독 경제협력은 동독 제품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가능하게 해 동독 경제의 체질강화에 일조했다”며 “서독의 내독정책 목표인 분단에 따른 인간적 고통의 완화와 민족 동질성 유지에 기여했다. 결국 독일 통일의 기초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국내 기술로 가공된 북한산 상품이 FTA 체결국에서 관세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경제 외교적 협의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 또 남북 교역도 관세 없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독일이 통일 전 동·서독 간 내독거래를 했듯이 남북도 내국거래협정을 통해 부가가치세 면제 또는 감세를 추진해 투자 기업들의 수익성 제고를 도모해야한다”고 말했다.
◇ ICT 경협도 주목…정부·기업·금융권 준비 필요
남북경협 분야에서 첨단기술 산업인 ICT(정보통신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이 역시 남북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첨단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장기적 경제계획으로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전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것”이라며 “과학과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은 혁명의 명맥을 창창하게 이어나가는 만년대계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27일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에 위치한 중국과학원을 찾기도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경우 노동집약적 산업만으로는 산업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북한이 IT 등 첨단산업 발전에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은 과거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달리 IT 산업 부문에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며 “베트남과 중국이 개혁개방 하던 시기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과학기술부문 예산지출을 경제발전 5개년전략 기간인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7% 가량 늘렸다.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의 과학기술 예산지출은 2016년 5.2%, 2017년 8.5%, 2018년 7.3% 증가했다.
이유진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통일사업부 연구위원은 “북한은 지난 3년간 투자를 통한 첨단기술산업 발전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환경기술(ET)은 2000년대 초부터, 나노(NT)·생명(BT) 기술은 2010년대 들어 집중 투자하고 있다. ICT는 2015년부터 북한 내에서 상용화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ICT 경우 온라인 쇼핑몰 ‘만물상’과 모바일 온라인 쇼핑몰 ‘옥류’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북한의 첨단기술 산업은 규모가 작고 국제시장 진출이 미흡하다. 이에 남북이 ICT 중심의 첨단기술개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유진 위원은 “북한의 과학기술기반 경제개발구상과 한국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접점이 있다. 첨단기술개발구 공동개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첨단기술개발구 조성 후보지로는 개성 고도과학기술개발구, 평양 은정첨단기술개발구, 파주 첨단산업단지 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진출 촉진, 기술가치 평가시스템 구축 등 첨단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해야한다”며 “금융권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유망 벤처·중소기업을 발굴해 개발구 진출과 투자유치를 지원하기 위한 전용펀드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이 첨단기술개발구를 만들어 ICT 중심 경협을 추진할 경우 한국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
이 위원은 “한국의 첨단산업은 대체로 규제가 높은 편이다. 반면 첨단기술개발구는 처음부터 획기적으로 규제를 낮출 수 있기에 한국 기업들이 들어가면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첨단기술개발구에 한국의 중소, 중견기업 위주로 입주하게 하면 중소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곳에서 청년들의 기술 창업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일자리 늘리기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한홍열 교수는 “북한의 IT와 과학기술분야 발전 잠재력을 고려해야한다”며 “이 분야의 한국 중소기업 대북 진출과 남북합작기업 활성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CT 업계는 남북경협을 위해 무엇보다 사업 안전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ICT 분야 남북경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의 안전성이다. 정치적 이유로 매번 경협이 중단된 과거가 반복돼선 안 된다”며 “또 전력과 도로 등 기본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뒷받침 돼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