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발 묶인 개헌…전문가들 “국회 의결 기준 과도”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헌법개정·선거제도 개혁 촉구 전국 957개 사회단체와 각계 인사 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국회의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안 합의, 지방선거와 개헌안 동시투표 공약 이행, 개헌 및 정치개혁안 마련 과정에서 국민참여 보장, 직접민주주의 도입 등을 요구했다. / 사진=뉴스1

현행 개헌 절차 상 국회의원 3분의 1이 반대하면 국민은 개헌안 투표조차 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국회 의결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개헌안 조문별로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또는 국회서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 이후에야 국민은 비로소 개헌안에 대해 찬반 투표할 수 있다. 국회의원 3분의 1이 반대하면 개헌 과정에 참여조차 어렵다.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하고 있는 야당은 개헌 저지선을 갖고 있기에 대통령 개헌안을 부결시킬 수 있다. 현재 국회는 정쟁으로 개헌 논의도 사실상 멈췄다. 지금의 개헌 절차 구조는 변화한 시대와 국민 요구에 따른 개헌 자체를 어렵게 한다.

국민들은 개헌에서 국회 의결 결과를 기다려야 할 뿐이다. 물론 개헌 발의권도 없다. 헌법 전문가들은 주권자의 개헌 소외를 막기 위해 국회 의결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개헌은 너무 어렵다. 개헌 절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엄격하다”며 “기존 국회의결 3분의 2 이상 기준을 국회 과반수 등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은 20여 번, 독일은 50여 번이나 개헌을 했다”고 덧붙였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재 개헌의 국회 의결 조건은 국민이 주권자로서 헌법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며 “개헌 취지에 따르면 ‘국민 투표’가 중심이 돼야 한다. 국회 의결 3분의 2 이상 조건을 5분의 3 이상 또는 과반수로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개헌 절차는 ‘국민 개헌발의권’ 요구와 연결된다. 황 교수는 “지금의 개헌 절차 구조는 국민에게 개헌발의권이 주어져 국민이 개헌안을 발의해도 국회서 무산되기 쉽게 만든다”며 “현재 국민은 개헌에 있어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이 발의한 개헌안과 국회의원 이해와 관련된 개헌안은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은 “국민에게 개헌발의권이 주어져 국민이 직접 발의한 개헌안에 대해서는 국회가 부결시켜도 그 이유와 함께 국민투표 과정을 거쳐야한다”며 “특히 국회의원 임기와 권한 등 의원들 이해관계가 달린 개헌안은 국회에 맡기는 것이 맞지 않다. 이러한 개헌안은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삼수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치사법팀장은 “1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 의결 과정 없이 국민투표를 붙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회 정쟁에 따른 개헌 봉착을 막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개헌을 위해서다”고 말했다.

개헌안 조문별로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개헌 절차는 개헌안 전체에 찬반 표시만 할 수 있다. 개헌안에 국민에게 불리한 안과 좋은 안이 함께 포함됐을 경우 개헌안 통째로만 표결하면 국민에게 불리하다. 개헌안 조문 하나하나마다 찬반을 표시할 수 있으면 주권자 국민의 뜻이 최대한 반영된다.

황도수 교수는 “개헌안 조문별로 찬반 표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위스 국민들은 개헌안 조문별로 찬반 투표 할 수 있다. 이것이 국민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한 의식 있는 국민들이다. 조문별 투표는 국민들에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곽노현 이사장은 “개헌안은 조문별로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맞다. 이상한 안이 포함되거나 의원들이 주고받기 식으로 타협하는 과정에서 엉성한 안이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부분을 조절하려면 조문별 투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헌환 교수는 국민이 소외된 현재 개헌 과정에 대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국민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쓰는 도구가 헌법이다. 국민이 중심인 개헌과 관련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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