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토스터기는 죽은 빵도 살린다는데, 죽은 연애 세포를 살리는 법이 왜 없을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면 감성이 촉촉해진다는 사실.

사진=우먼센스 윤현지

제인 오스틴을 단순히 낭만적인 로맨스 작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며 음울함과 냉소를 모른 척하기는 어려우리라. 사실 제인 오스틴은 살아 있을 때에도, 사망한 뒤에도 한동안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물론 그 이후 그녀의 조카 제임스 에드워드 오스틴 리의 회고록이 출간되면서 재평가되기는 했지만, 그가 ‘제이나이트(Janeite)’라는 열렬한 애독자 그룹을 거느리며 영국 10파운드짜리 지폐에 얼굴을 새기게 된 것은, 1940년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영화와 TV 시리즈의 덕이 컸다.

 

제인 오스틴이 문학사에 남긴 영향력은 대단했고 많은 이들이 그의 능력을 인정했지만 혹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마크 트웨인의 혹평은 인상적이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책을 펼치기가 무섭게 번번이 포기하게 된다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마다 제인 오스틴의 무덤을 파내고 정강이뼈를 뽑아서 그녀의 해골을 패주고 싶었어.” 잠깐! <오만과 편견>이라고 했나? 하지만 제인 오스틴이 집필한 6권의 소설 중에서 가장 확장성이 컸던 것이 바로 그 작품이다.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30편이 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영화화된 것이 <오만과 편견>이었고 그 후에도 다양한 인상적인 영화들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 작품이다. 2004년 거린더 차다 감독의 <신부와 편견>은 발리우드(인도 영화계) 스타일로 재해석한 <오만과 편견>이다. 주인공들이 인도의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다.

 

2016년 버 스티어스 감독이 찍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어떤가. 제목 그대로 이 영화에는 좀비가 산지사방에서 튀어나온다. 원작이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소설인데 사랑과 질투로 갈등하는 제인 오스틴의 여자와 남자들을 좀비로 가득 찬 도시에 데려다 놓는다. 말랑말랑한 로맨스 감성에 액션을 더한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을 새 소설로 써낸 것이 이 작품뿐일까? 천만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P.D. 제임스가 쓴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는 <오만과 편견> 완결 시점에서 6년 후에 펨벌리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다룬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은 제인 오스틴이 멈춘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자신들의 고민을 이어나간다. 제인 오스틴이 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꼼꼼하게 재현된 배경 위에 충실히 묘사한 이 작품은 이후 BBC에서 <오만과 편견> 출간 200주년 기념 3부작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할 만큼 독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확장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오만과 편견>만은 아니다. ‘제인 오스틴 스타일’을 현대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에게 연애의 비결을 배우려는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모라 켈리, 잭 머니건), <제인 오스틴의 연애론>(로렌 헨더슨), <제인 오스틴에게서 배우는 사랑과 우정과 인생>(윌리엄 데리지위츠)뿐 아니라, 제인 오스틴과 현대의 소녀들을 한자리에 모은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멜리사 젠슨), 심지어 제인 오스틴이 만든 상황 속에서 독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게임 형식을 도입한 <제인 오스틴의 미로>(엠마 캠벨 웹스터) 까지.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 의해 확장되는 중이다. 제인 오스틴은 죽었지만 ‘제이나이트’들이 더 이상 읽을 작품이 없다며 심심해할 일은 없겠다.​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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