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위상 강화해도 오너 대체는 어려워…전자·비전자 제조·금융 TF가 3각 컨트롤타워 역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 사진=뉴스1

삼성이 세간의 관측대로 이사회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사외이사 문호를 개방하면서 거버넌스 개선 분위기를 고조시킨 모양새다. 삼성이 돌아오는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혁신안을 비롯해 더 강력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을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다만 ‘뉴삼성’의 청사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근 얼개를 드러낸 사업부별 TF(태스크포스)까지 포괄해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28일 GE에서 CPO(최고생산성책임자)를 지낸 필리프 코셰 씨(前 프랑스 알스톰 사장)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23일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前 미국 벨연구소 사장)과 김선욱 전 이화여대 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가결한 바 있다. 이중 코셰 전 CPO와 김 회장은 ‘외국인’이라는 점에 더해 글로벌 기업 최고위 경영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 전 총장은 첫 여성 법제처장 출신 인사다.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이 예상됐던 움직임을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10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이 최근 사외이사 영입과정에서 전보다 상징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분위기다. 시장과 정부에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도 삼성 행보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데, 예상대로 카드가 나온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삼성이 이사회 경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도 잇따르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상훈, 최치훈 사장을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한 바 있다. 이전까지는 늘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해왔다. 여기에 다양한 사외이사를 영입해 내부 견제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내보인 셈이다. 그간 정부‧여당 내 재벌개혁론자 상당수는 재계에 ‘독립적인 이사회 구축’을 주문해왔다.

아직 정부는 삼성의 움직임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달 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소유 지배 구조 개편에 나선 기업’ 목록에서도 5대그룹 중 유일하게 삼성의 이름만 빠졌다. 도리어 현대자동차의 사외이사 주주 추천제도 도입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룹 창립 80주년 행사와도 겹친 이달 주총에서 삼성이 이사회 위상강화를 비롯해 더 강력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공개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때마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5대그룹의 간담회도 3월 주총시즌 이후 재개될 공산이 크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정위는 재계에 3월 지배구조 개편 데드라인을 제시했고, 삼성에게는 모범사례를 요구중”이라면서 “삼성이 조기에 그룹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재벌개혁 정책에 적극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또 이 부회장이 아직 재판을 받는 터라 시장에도 명확한 카드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직 사임 가능성도 점쳐진다. 잇달아 단행된 주주환원정책도 시장에 보내는 신호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 같은 변화만으로 ‘이재용표 뉴삼성’의 청사진이 다 드러났다고 판단키는 어렵다. 이사회 강화는 내부견제와 개방적 기업운영 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실제 현장 사업조직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데는 단점이 있다는 뜻이다. 권한이 강화된 이사회가 어느 선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부여받게 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삼성전자의 경우 각 부문장 간 협의체인 경영위원회가 있지만 대규모 투자나 M&A 등 핵심 의사결정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불어 기업별 이사회가 그룹 내 업종 간 시너지를 꾀하는 데서는 약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사회 위상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삼성 오너 일가의 역할까지 대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때문에 3각 TF를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삼성은 최근 전자계열사(사업지원TF), 비전자 제조 계열사(EPC경쟁력강화TF), 금융계열사(금융경쟁력제고TF) 등 3개 TF를 구축해놓은 상태다. 지난해 2월 28일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후 1년 만에 사업부별 컨트롤타워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삼성 사정에 밝은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삼성의 기업문화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이 부회장이 경영핵심에서 배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주회사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삼성에는) 도입이 어려워졌다”면서 “이 때문에 (삼성이) 사업별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있는데, 이는 해외 여러 큰 기업집단들도 갖추고 있는 모델이다. (3각 TF를 통해) 사업 시너지를 키우는 방향으로 중장기적인 전략을 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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