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현대로템이 근본적인 원인 제공”…현대로템, 별도 소송 진행 중
알루미늄 전문업체 알루코가 2013년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2층 고속열차(KTX) 기술개발’ 실패의 책임을 벗었다.
알루코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 사업 협동연구기관으로 참여한 현대로템의 불성실한 과제 수행이 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부 이진만 부장판사)는 최근 알루코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를 제한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알루코의 손을 들어줬다고 24일 밝혔다.
국토부는 2013년 철도기술연구사업 중 하나로 ‘2층 고속열차 기술개발’ 과제를 추진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2013년 11월 11일 주관연구기관으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선정했다. 또 협동연구기관으로 현대로템과 알루코를 참여시켰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같은 날 이 사건 세부과제인 ‘2층 고속열차 구성품 설계 및 차량 제작기술 개발’ 과제를 현대로템과 체결하고 공동 연구기관으로 알루코를 포함시켰다. 현대로템은 같은날 이 사건 세부과제 중 ‘2층 고속열차 알루미늄 압출 차제 개발’ 과제 협약을 알루코와 체결했다. 1차 계약은 2014년 7월까지, 2차 계약은 2015년 6월까지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2015년 6월 국토교통부의 2차연도 과제평가에서 현대로템이 낙제점인 49점을 받아 중단됐다. 과학기술기본법은 중간평가 및 단계평가 점수가 만점의 60%에 미달할 경우 해당 연구개발과제를 실패한 연구개발과제로 결정하고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현대로템은 논문 등 성과목표 미달성, 연구비 집행실적 미흡, 세무과제에 관한 통합 연구 추진일정과 실적 지시 미흡 등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알루코 역시 과제종료일까지 연구장비·재료비 98%를 사용했으나, 최종 시제품 생산 및 소재특성 평가를 시행하지는 못했다.
국토부는 2015년 9월 과제 성실수행 여부 점검회의를 통해 이 사건 세부과제에 참여한 기관 중 현대로템과 알루코 측이 불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해 이 사건 과제 전체가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대로템에 지원된 정부 연구비 46억원을 환수하고, 3년간 연구·개발(R&D) 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알루코에 대해서도 9억8500만원을 환수하고 3년간 국가 R&D 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이에 알루코는 “현대로템과 달리 세부 과제만 수행했다”면서 “세부과제 연구개발 결과가 불량했던 이유도 현대로템의 차체 등 관련 단면도 제작이 지연됐고, 현대로템이 상세설계도에 대한 승인을 지연했기 때문이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현대로템 측 문제로 발생한 책임을 알루코 측에 묻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알루코가 이 사건 과제 중단 시점까지 수행과제 중 일정 부분을 수행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로템의 차체 등 관련 단면도 제공 지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사건 과제 실패에 관한 책임을 알루코에게 돌릴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로템과 알루코의 협업과정에 비춰볼 때 현대로템의 차체 등 관련 단면도 제작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구성품을 상세 설계한다는 것은 어렵다”면서 “현대로템은 2015년 2월에 이르러서야 차체 관련 단면 초안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 단면도는 2015년 4월에야 확정됐고 그 이후에도 세부 수정이 이뤄졌다.
현대로템도 이 사건 처분과 관련해 국토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순욱 부장판사)에 배당돼 있다. 알루코 사건과 재판부가 다르기 때문에 ‘2층 고속열차(KTX) 기술개발’ 실패 원인과 관련해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국가연구개발사업참여제한 처분을 받은 현대로템은 2016년 11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코레일과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한국형 ‘2층 고속열차(KTX)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업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업체로 바뀌었을 뿐이고, 한 차례 낙제점을 받았던 현대로템이 다시 연구기관에 포함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철도산업의 독점적 시장구조 탓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다. 국내 철도차량 공급은 과거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한진중공업 등 3개 회사의 경쟁체제로 이뤄졌지만, 1999년 3사 통합 이후 사실상 현대로템이 독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