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현대로템이 근본적인 원인 제공”…현대로템, 별도 소송 진행 중

지난해 12월 12일 강원 진부(오대산)역에서 강릉발 서울행 KTX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알루미늄 전문업체 알루코가 2013년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2층 고속열차(KTX) 기술개발실패의 책임을 벗었다.

 

알루코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 사업 협동연구기관으로 참여한 현대로템의 불성실한 과제 수행이 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재판부 이진만 부장판사)는 최근 알루코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를 제한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알루코의 손을 들어줬다고 24일 밝혔다.

 

국토부는 2013년 철도기술연구사업 중 하나로 ‘2층 고속열차 기술개발과제를 추진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20131111일 주관연구기관으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선정했다. 또 협동연구기관으로 현대로템과 알루코를 참여시켰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같은 날 이 사건 세부과제인 ‘2층 고속열차 구성품 설계 및 차량 제작기술 개발과제를 현대로템과 체결하고 공동 연구기관으로 알루코를 포함시켰다. 현대로템은 같은날 이 사건 세부과제 중 ‘2층 고속열차 알루미늄 압출 차제 개발과제 협약을 알루코와 체결했다. 1차 계약은 20147월까지, 2차 계약은 20156월까지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20156월 국토교통부의 2차연도 과제평가에서 현대로템이 낙제점인 49점을 받아 중단됐다. 과학기술기본법은 중간평가 및 단계평가 점수가 만점의 60%에 미달할 경우 해당 연구개발과제를 실패한 연구개발과제로 결정하고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현대로템은 논문 등 성과목표 미달성, 연구비 집행실적 미흡, 세무과제에 관한 통합 연구 추진일정과 실적 지시 미흡 등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알루코 역시 과제종료일까지 연구장비·재료비 98%를 사용했으나, 최종 시제품 생산 및 소재특성 평가를 시행하지는 못했다.

 

국토부는 20159월 과제 성실수행 여부 점검회의를 통해 이 사건 세부과제에 참여한 기관 중 현대로템과 알루코 측이 불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해 이 사건 과제 전체가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대로템에 지원된 정부 연구비 46억원을 환수하고, 3년간 연구·개발(R&D) 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알루코에 대해서도 98500만원을 환수하고 3년간 국가 R&D 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이에 알루코는 현대로템과 달리 세부 과제만 수행했다면서 세부과제 연구개발 결과가 불량했던 이유도 현대로템의 차체 등 관련 단면도 제작이 지연됐고, 현대로템이 상세설계도에 대한 승인을 지연했기 때문이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현대로템 측 문제로 발생한 책임을 알루코 측에 묻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알루코가 이 사건 과제 중단 시점까지 수행과제 중 일정 부분을 수행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로템의 차체 등 관련 단면도 제공 지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사건 과제 실패에 관한 책임을 알루코에게 돌릴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로템과 알루코의 협업과정에 비춰볼 때 현대로템의 차체 등 관련 단면도 제작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구성품을 상세 설계한다는 것은 어렵다면서 현대로템은 20152월에 이르러서야 차체 관련 단면 초안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 단면도는 20154월에야 확정됐고 그 이후에도 세부 수정이 이뤄졌다.

 

현대로템도 이 사건 처분과 관련해 국토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2(재판장 장순욱 부장판사)에 배당돼 있다. 알루코 사건과 재판부가 다르기 때문에 ‘2층 고속열차(KTX) 기술개발실패 원인과 관련해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알루코 판결 결과와 관련해 현대로템 관계자는 저희 측과 무관한 소송이기 때문에 언급할 내용이 없다. 진행 중인 소송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연구개발사업참여제한 처분을 받은 현대로템은 201611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코레일과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한국형 ‘2층 고속열차(KTX)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업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업체로 바뀌었을 뿐이고, 한 차례 낙제점을 받았던 현대로템이 다시 연구기관에 포함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철도산업의 독점적 시장구조 탓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다. 국내 철도차량 공급은 과거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한진중공업 등 3개 회사의 경쟁체제로 이뤄졌지만, 19993사 통합 이후 사실상 현대로템이 독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로템 관계자는 이번 개발사업은 R&D 투자차원에서 현대로템 예산으로 진행 중”이라면서 과거 불성실 과제 수행 사건과 별개로 판단해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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