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안전점검도 형식 그쳐…입주자들 "돈 안쓰고 안전할 수야" 체념


노량진 인근의 고시촌. / 사진=윤시지 인턴기자

#노량진 A고시원은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도가 좁다. 방문을 열면 통로가 막혀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B고시원은 완강기 앞에 짐이 가득 쌓여 있었다. 비상구 유도표지를 제대로 갖춘 고시원은 찾기 어렵다.


고시원이 밀집한 ‘고시촌’은 화재안전 관리의 사각지대다.소방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희박한데다 화재안전관리를 영업주의 자율적 점검에 맡기다보니 제도의 실효성도 의심스럽다.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고시원은 다중이용업소로 분류된다. 다중이용업소는 화재발생시 다수의 인명피해가 우려돼 소방시설등의 설치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된다. 현행법상 다중이용업소는 분기별 1회 이상 화재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소화설비, 피난설비, 경보설비 점검 등 화재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점검항목이 포함된다. 

다중이용업소 화재안전점검은 영업주 또는 영업장이 속한 특정소방대상물 소방안전관리자에 의해 실시된다. 그러나 영업주의 자율적 점검을 거쳐 작성된 안전점검 문서는 구청이나 소방청에 별도로 제출할 필요가 없다보니 정기점검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관악구 소방안전관리 관계자는 “소방안전관리자들이 다중이용업소 중 고시원을 예의주시해 관리하려고는 하나 구청에서 별도로 분담하는 부서도 없고 규제도 미비한 편”이라고 전했다.

특히 주택을 고시원으로 개조하여 사업자등록 없이 하숙처럼 운영하는 업소의 경우 소방재난본부에서 실시하는 작동기능점검과 같은 정기적 점검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럴 경우 업주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위해 사업장의 화재 예방에는 신경 쓸지 모르나, 비상구 확보 등 피난설비 관리엔 소홀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신림동 고시원에서 거주했던 최모씨(여, 26)는 “시험 기간마다 사람들이 방을 계속 채우니 영업주들이 굳이 돈을 투자해서 시설을 개선할 필요는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전기장판 코드와 핸드폰 충전기가 잔뜩 꽂혀 있는 멀티탭과 좁은 복도, 희미한 비상구 유도등을 볼 때마다 “화재가 나면 다 죽겠다”는 두려운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고시원이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은커녕 최저주거기준에조차 미달한다.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 등 경제적 여유가 없는 주거취약계층은 월 임대료가 30만원이 안 되는 값싼 고시원을 찾는다. 

노량진 인근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김모씨(남, 28)는 “안전도 돈을 들이지 않고는 확보할 수 없는 것”며 “돈이 부족하니 이런 열악하고 위험 천만한 생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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