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공급중심 한류와 대비되는 ‘팬 주체’ 한류…유튜브 등에 업고 글로벌 팬덤지형 형성

그룹 방탄소년단이 20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아시아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돼 레드카펫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BTS)과 빌보드(Billboard)를 구글 검색어에 함께 넣으면 외신에만 족히 수천 개의 기사가 뜬다. 갓 데뷔 5년차인 BTS가 세계 대중음악 주류인 북미시장을 달구는 건 이제 새로운 얘깃거리가 아니다. 미국의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듀오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는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BTS를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란 말로 부족한 팀”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BTS가 한류를 다시 부흥시키고 있나?​라는 물음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망설여진다. BTS의 성공문법과 기존 한류문법의 간극이 너무 큰 탓이다.


한류는 정의하기 까다로운 단어다. 개념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좁게는 드라마, 케이팝(K-pop), 한식 등 한국 문화콘텐츠의 해외수출 그 자체가 한류라 불린다. 국내 유통업계는 화장품과 의류, 외식브랜드를 ‘한류의 첨병’이라 포장한다. 모양새는 다양하지만 바탕에 깔린 사고는 매한가지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할 거라는 믿음이다.

국내 연예기획사의 비즈니스 전략이 공급이 된 건 이 때문이다. 기획사는 오랜 기간 자본을 투자해 아이돌이라는 상품을 제작한다. 대형기획사는 자사 아이돌을 음악 프로그램 뿐 아니라, 리얼리티 예능에까지 출연시킬 힘도 갖췄다. 멤버 일부는 드라마나 영화에 배우로도 등장한다. 노출이 많을수록 주목도가 따라오는 건 당연지사다. 문제는 이게 국내 시장 바깥으로 가면 별 효과를 못 낸다는 데 있다. 사실 ‘강남스타일’ 열풍도 싸이 소속사 YG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

◇ 디지털이 만든 ‘글로벌 덕질’…방탄소년단 세계화 이끌다


BTS 성공신화는 정확히 이와 반대지점에서 시작됐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즉 팬(fan)이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는 “BTS현상의 주체는 팬이다. 미디어 지형 변화로 한 국가에 자리한 콘텐츠도 실시간으로 번역돼 전파되고 있다”면서 “팬덤(fandom) 또한 초국가적 연결을 이루고 있는데, BTS 열풍은 시공간을 초월한 국경 없는 ‘덕질’(한 분야에 열성적으로 몰두하는 일)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덕질의 세계화’를 가능케 한 동력은 유튜브(Youtube) 같은 소셜미디어다. 

 

김수철, 강정수 박사는 2013년 발표한 논문 케이팝에서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유튜브는 전 세계 수많은 대중음악(산업) 커뮤니티, 댄스 커뮤니티와 광범위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이들 커뮤니티는 새로운 경험과 실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별다른 해외 전략 없이 만든 뮤직비디오가 곧 글로벌 전략으로 그리고 글로벌 팬들을 위한 제작과 콘텐츠로 전화(轉化)될 수 있는 곳이 유튜브”라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수년 전부터 ‘유튜버’들이 뮤직비디오 리액션을 열심히 편집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양한 국가 뮤지션의 뮤직비디오가 소개됐다. 유튜버들은 미국 공연장에서 BTS 팬들이 보여준 응원법만을 촬영해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영상이 다시 SNS(Social Network Service·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팬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BTS에 대한 관심과 인기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7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이하 BBMA)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뷔, 슈가, 진, 정국, 랩몬스터, 지민, 제이홉. 방탄소년단은 5월 22일 BBMA에 참석해 K팝 그룹 최초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 / 사진=뉴스1

김아영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 연구원도 “BTS 현상은 콘텐츠를 수출해 수요를 만들어낸 그간의 한류수익 구조로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BTS 팬덤인 A.R.M.Y 결속력이 강력하다는 평이 많은데, 국경을 아우르는 이들 팬들은 대부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공급자의 상품에 단순반응하기보다 스스로 향유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찾고, 이를 SNS공간에서 다시 유통시키는 데 능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BTS 팬들은 왜 유튜브를 본거지로 삼았을까? 간단하다.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케이팝은 북미권에서 아직 하위문화(Subculture)의 일종이다. 

 

《케이팝의 시대》 저자인 이규탁 한국조지메인슨대 교수는 “우리나라라면 케이팝 가수들을 TV, 광고, 버라이어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바깥 팬들은 케이팝 가수들을 자주 접하기 어렵다. 그들에게 동양인이 나오는 쇼는 아직 낯선 콘텐츠기 때문”이라며 “메인스트림 미디어에 나오기 어렵다보니 팬들의 인터넷 의존도가 크다”고 설명했다.

◇ 영토를 넘어 상호작용하는 글로벌 팬덤…한류도 새 개념 정의 필요


텔레비전, 라디오와 달리 유튜브는 경계가 없다. 케이팝의 전지구적 확산 과정에서 ‘단단한 영토경계’를 허물기 좋다는 뜻이다. 케이팝 특유의 팬 문화로 소통의 장을 꾸리기에도 유튜브 만한 곳이 없다. 

 

이규탁 교수는 “동아시아 바깥지역 팬 문화는 리액션 비디오나 커버댄스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전 세계에 널리 산재된 팬들끼리 팬 문화를 나누고 정보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튜브가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BTS 현상은 한류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의를 요구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국가, 기획사, 언론, 평론가 등 다양한 매개 고리를 흐릿하게 만든다. 문화를 직접 매개하는 건 팬이다. 혼자 따라해 보던 춤도 스마트폰으로 찍어 업로드하면 다른 나라 팬들이 이내 반응해준다. 한국 팬과 프랑스 팬, 미국 팬은 영토를 넘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한다. 

 

장민지 박사는 “이제는 ‘한류’처럼 출신국가를 강조하는 단어나 ‘한국의 방탄’, ‘한국의 싸이’ 같은 조어보다는 특정 뮤지션에 대한 글로벌 팬덤 중심으로 콘텐츠 소비 흐름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장사를 잘하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흐름을 보다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이 교수는 “비록 BTS가 성공을 거뒀지만 동아시아 출신 가수가 미국 메인스트림에서 사랑받는 건 여전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거 JYP가 원더걸스를 미국 메인스트림에 진출시키기 위해 애썼지만 효과적이었다고 보긴 힘들다”면서 “인터넷에는 그런 장벽이 없다. 팬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기획사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명민한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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