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한 대외 활동은 오너와 정부 잇는 역할 성격 짙어…각 계열사 사업영역 영향력은 강화될 듯

2일 대한상공회의소회관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과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오른쪽)이 삼성, 현대자동차, 엘지, 롯데, 에스케이 등 5대 그룹 전문 경영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 대기업 오너 뒤에 가려져 좀처럼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던 전문경영인들이 최근 들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전문경영인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좀 더 세밀히 들여다 보면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단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5대그룹(삼성‧현대차‧LG‧SK‧롯데)을 대표하는 이들과 간담회를 갖고 기업개혁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기업들에게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대해 의구심이 남아있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당시 기업을 대표해 나온 인물들은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하현회 LG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황각규 롯데 지주 사장으로 그룹 오너는 없었다. 이보다 앞서 6월 이뤄진 김 위원장과 4대그룹의 만남 당시에도 모두 전문경영인들이 참석했다. 과거 2004년 공정위원장이 4대 그룹과 만남을 가졌을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 오너들이 총출동 한 것과 대조적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전문경영인들이 그룹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자 일각에선 갖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오너들이 뒤로 빠지는 모양새를 취하고, 이들이 자기 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과장된 시각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현재 전문경영인들이 오너를 대신해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기업들이 정권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단 전문경영인들이 가교 역할을 하지만, 결국 주요 의사결정권은 여전히 오너에게 있다”고 해석했다.

 

전문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오너와 정부를 잇는 가교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재계 오너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튀지 않는 것”이라며 “이것은 어느 그룹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 오너 들이 정권과 거리를 유지하며 적당한 긴장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그룹 오너들과 정권의 만남 자체가 어색한 일이 돼버렸고, 이런 풍토가 오너들의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정부와 기업의 자연스러운 접촉 및 협의도 부정한 일처럼 만들어 버렸다”고 토로했다.

다만 현 정부의 재벌개혁 움직임이 강해질수록 전문경영인들이 각 사업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너의 역할이 적은 지분이나 순환출자로 계열사 경영에 세세하게 관여하기 보단, 이사회나 지주회사를 통해 큰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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