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과로사 빈번한 업종으로 변해…경영투명성·지속가능 성장에 필요

A시중은행 부장과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 나온 금융권 관련 기사를 읽어봤냐고 물었다. 최근 10년간 과로사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업종으로 금융업이 꼽혔다는 기사였다. 잠깐이었지만 머뭇거리는 표정과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실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한 은행원이 처음 본 기자에게 “은행 모바일뱅크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자신의) 사원번호를 (추천자로) 입력해 달라”거나 ​카드 하나만 해달라. 나중에 해지하면 된다​라고 부탁했다. 업무를 마치고 은행 문 밖을 나온 기자를 불러 세워 꼭 가입해 달라고 한 직원도 있었다. 실적을 위해 목을 메는 현장이었다. 매 분기 은행들이 발표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두가 길었다. 은행권에 불기 시작한 ‘노동이사제’(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를 의무적으로 이사진에 포함하는 방안)의 필요성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기 위해서다. 금융권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약 사안이기도 한 노동이사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반대 진영에선 은행 산업의 위기론까지 거론하며 노조의 경영권 간섭이 그 위기를 더 위기답게 만든다고 반대한다. 노조가 친노조 정부의 등에 업혀 변화를 말하면서 현실에는 눈 감고 귀를 닫았다고 비판한다. 관치(官治)에 이어 노치(勞治)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근로자 추천을 받아 이사가 된 사람이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그 기업에 해가 된다는 주장에선 근거가 빈약하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의사결정 지연을 가져온다는 것이 반대 논리의 맥이다. 급변하는 금융권에 경영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반대 논리에 빗대어 보면, 최고경영자에게 낙점받은 은행의 사외이사가 모든 안건을 몇 번의 회의로 ‘100% 찬성 통과’ 시키는 이른바 ‘발빠른 의사결정’이 은행 산업에 도움된다고 보는 것인데 이는 더 위험한 시각이다. 관치를 벗어난 금융지주 최고경영자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은행 경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등 금융선진국에서 일어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봐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의 탐욕을 통제·감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가운데, 18국이 노동조합 대표 또는 종업원 대표가 노동이사로 최고의사결정에 참여한다.

국내 사례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예가 KB국민은행이다.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뱅크(BCC) 투자 실패 이후 내부적으로 “잘 모르고 했다”라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왔다. 이 대규모 투자도 강정원 KB금융 전 회장이 주도했다. 견제받지 않는 경영의 결과였다. 

 

현재 KB금융 노동조합협의회가 은행 앞에서 컨테이너 항의를 지속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견제가 가능한 경영 지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시작된 항의다. 부당노동행위와 신입사원 임금삭감 등은 리딩뱅크 탈환을 위한 은행 수익 경쟁에서 비롯됐다. 


은행권 노동이사제는 최고경영자로부터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와 내부 견제자로서 노동자의 권리 강화 차원에서 봐야 한다. ​은행 산업을 단기적인 수익 산업으로만 볼 경우 은행구성원은 실적 경쟁에 휩쓸린다. 

 

은행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지금 국내 은행은 업무 부담으로 과로사가 나오는 업종으로 변하고 있다. 노동이사제가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경영 투명성과 은행원 근로수준 향상에 해결 실마리는 제공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성장도, 주주 이익의 극대화도 이뤄낼 수 있다. 

 

변화는 항상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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