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번지며 스캔들 비화…장민지 “남성중심주의적 IT업계 현실 드러내"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 본사. / 사진=셔터스톡

실리콘밸리의 선두주자 구글(Google)이 이른바 ‘메모’ 스캔들에 휩싸인 지 8일이 지났다. 그간 불길이 진화되기는 커녕 울타리 바깥까지 번져버린 형국이다. 미국 유수 언론이 후속보도를 쏟아내는 덕에 메모 작성자인 제임스 데모어(James Damore)는 순식간에 순다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만큼 유명한 인물이 돼버렸다.

시작은 10쪽 자리 메모였다. 구글 엔지니어 제임스 데모어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IT전문매체 기즈도모(Gizmodo)에 ‘구글의 이상적인 반향실’(Google’s Ideological Echo Chamber)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데모어는 “여성이 기술산업에서 (지위가) 불충분하게 대표되는 이유는 직장 내 편견이나 차별 탓이 아니라 남녀 간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술산업에는 미적‧예술적 영역을 더 잘할 수 있는 여성보다 체계적인 정리에 능숙한 남성이 더 어울린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그는 구글이 정치적으로 좌편향 돼 있다고도 문제 삼았다.

이때도 논란은 뜨거웠다. 그런데 구글이 데모어를 해고하면서 불길이 더 커졌다. 10일(현지시간) 집권 공화당의 데이나 로러배커(Dana Rohrabacher) 연방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기술 독점 기업들에 의해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부당하게 대우받는 건 시민권의 문제”라고 썼다.

11일(현지시간)에는 당사자인 데모어가 직접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왜 나는 구글에서 해고됐는가’(Why I Was Fired Google)라는 글을 싣고 순다 피차이 CEO가 자신의 메모를 곡해한 채 발언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내서도 유명한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뉴욕타임스(NYT)에 ‘순다 피차이는 구글 CEO를 사임해야 한다’는 칼럼을 내보냈다. 그는 첫 문장을 “(이번) 구글/다양성 드라마에서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단연 최악의 배우는 순다 피차이”라고 썼다.

보수사이트에서는 데모어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이 진행되고 있다. 목표 모금액은 1년 6만달러(한화 6838만원)다. 데모어는 법적 공방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번 스캔들은 여성혐오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IT산업 내 기술 엔지니어의 위상 등 매우 휘발성 강한 이슈가 얽히고 설킨 사건이다. 여성혐오, 백인우월주의, 극우주의 혐의를 받는 트럼피즘(Trumpism, 도널드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 시대 한복판에서 발발한 사건이라는 점도 관심거리다.

이에 기자는 미디어‧콘텐츠 산업 내 젠더감수성을 관찰해온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에게 이 사태에 관한 시각을 물었다. 연세대에서 학위를 받은 장 박사는 박사논문 〈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으로 2015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섹슈얼리티와 퀴어》(2016)가 있고, 지난 4월 열린 ‘게임문화포럼’에서는 ‘게임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음은 장 박사와 나눈 문답.

이번 사태를 어떻게 관찰했나?


제임스 데모어 말대로 구글이 그렇게 여성편향적인 회사라면 여성들이 당장 입사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다. 물론 실제 구글이 그렇지는 않을 거다. IT업계 뿐 아니라 그들을 훈련시켜온 공대는 오랫동안 남성중심 사회였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IT업계의 기반인 물리학, 수학, 프로그래밍 등이 남성에게 적합한 학문이라는 젠더 바이어스(Gender Bias, 성역할에 대한 편견)가 결과적으로 IT 직업세계에 여성 비율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항상 남성이 다수일 수밖에 없었다. 다수자로서 형성시켜온 편견이 공개적 방식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데모어는 “많은 구글러(Googlers)로부터 중요한 이슈를 꺼내줘 고맙다는 개인적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글 내에서도 소수지만 호응을 얻고 있다는 의미인데? 


데모어 메모를 보면 이분법이 눈에 띈다. 체계적 사고는 남성이 잘하고 미적 사고는 여성이 잘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기술적이거나 수학적인 것이 남성들에게 적합하다는 식의 교육 자체가 편견이다. 이 편견이 다시 교육을 편견에 맞게 구성한다. 구조적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잘못된 이분법 구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데모어 메모에도 호응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최근에는 IT업계에 여성들의 유입비율이 높아지지 않았나?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자. 지금은 IT업계에서도 디자인이나 감성적인 부분에 대한 수요가 필요하다. 데모어도 그의 메모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사회적이거나 예술적인 영역에 강하다’라고 썼더라. 물론 데모어의 말은 편견을 조장하는 의도가 가득하지만, 어찌됐든 프로그래밍이나 테크놀로지에 감성적 요소가 필요하게 된 건 사실이다. 즉 IT업계 내에서 이른바 ‘여성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역할’에서 유입이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때문에 남성중심적 경향이 도드라져 보였을 수도 있다.

제임스 데모어 같은 남성 엔지니어들은 IT산업에 여성들이 늘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느낀 걸까? 


감성적 요소의 필요성도 있지만 점차 여성들이 기술과 프로그래밍 분야 대학 진학률도 과거보다 높아지는 추세다. 엔지니어 분야에 여성이 진입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졌다는 의미다.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지니 마치 자신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같을 수 있다. 엔지니어 세계에는 남성이 절대다수인 게 항상 정상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IT업계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거의 없다고 알려질만큼 리버럴(Liberal)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정치적 성향으로서의 리버럴과 젠더 바이어스(Gender Bias)는 별개 문제다. 가령 정치적 진보 성향과 젠더에서의 보수성향이 공존할 수 있다. 근대 역사에서 젠더 감수성이 정치적 성향에 포함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건 해외건 IT업계에도 젠더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다.


젠더정체성은 매우 다양하다. ‘여성은 이렇고 남성은 저렇고’ 식으로 손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업무 성과에서 차이가 나타난다면, 이는 개별 능력의 차이이지 성별의 차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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