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떠받치는 정책·최저임금인상 등 이면을 봐야…적은 지출로 만족감 높일 제도 고민을

# 필자와 가족들은 3년간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지낸 적이 있다. 2000년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아 뉴욕으로 날아갔을 때다. 당시 미국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하려면 매달 1200달러를 내야 했다. 환율이 1300원대 중반을 오갔을 때니 건강보험료로 매달 160만원 정도를 지출해야 했다. 그 돈이 부담이 돼서 여차하면 귀국하겠다는 각오로 3년을 건강보험없이 버텼다. 친구들과 단체여행을 가려던 아이가 건강보험에 가입이 안됐다는 이유로 집에 머물러야 했던 적도 있다.


미국에도 공적 건강보험이 있지만 저소득층이나 고령자, 장애인들이 대상이다. 그 외에는 민간 건강보험에 가입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 보험료가 만만치 않기에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공적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면서도 민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한때 20%까지 갔을 때도 있다.

# 최근 서울의 물가수준이 뉴욕이나 파리를 앞질러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여섯 번째로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관인 EIU(Economic Intelligence Unit)와 컨설팅사 머서(MERCER)가 공동으로 세계 133개 도시의 물가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홍콩, 취리히,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정도가 서울보다 물가가 비싼 도시로 나타났다.

문제는 소득수준과 비교하면 서울의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란 점이다. 대한민국보다 소득이 높은 미국이나 프랑스의 주요 도시보다 서울 물가가 비싸다는 것은 그만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시민들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한국은 주거비용과 식료품값에선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비용 제도들 심각한 문제 초래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사례는 한국이 앞으로 정책을 선택해야 할 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기적인 목표만 볼 게 아니라 장기적인 비용구조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높지만 비용이 비싸게 책정된 민간 건강보험 제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국가주도의 공공 건강보험이 정착돼 비교적 적은 부담으로 국민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다. 의료보호 제도에선 한국이 미국보다 월등히 앞서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높은 물가 때문에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비관론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살아가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청년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넘어 결혼까지 포기할 지경에 이른 것도 그래서다.

이처럼 고비용 구조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가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고비용 사회를 향해 치닫게 하는 정책들이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새로 시행될 예정이어서 우려가 된다.

◇부동산 금융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국을 고비용 구조로 이끄는 가장 대표적인 부문은 누가 뭐래도 부동산이며, 그 중에서도 부동산 금융의 심각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저금리로 부동산 대출을 해주면 실수요자 입장에선 싼 이자로 돈을 빌리니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제도가 이 나라 부동산 버블을 만든 주범이며 한 단계 넘어서 실수요자들에게 엄청난 집값 부담을 씌운 것 또한 분명하다.

이미 미국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는 모기지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실수요자의 주택 마련을 지원하는 제도란 탈을 쓰고 나왔지만 그 이면엔 금융기관들의 새로운 먹거리이자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제도들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저비용 주택제도인 전세를 몰아내고 나라 전체를 부동산 광풍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고비용 이끄는 정책들 지금도 여전

이외에도 한국사회를 고비용 구조로 이끌고 있는 정책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부자 증세를 통해 최저임금을 올려주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도 겉으로 보면 매우 근사하다. 그러나 일시적 형평을 위해 들여야 하는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누구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있다.

과거 수년 동안 최저임금을 인상해왔지만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미뤄볼 때 실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정책들이 부자들의 탁월한 비용전가 능력을 간과하고 임시변통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환율정책을 고수하면서 수입 밀가루 값이 5% 오르면 자장면 가격은 10~20%가 올라가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곧이어 커피나 피자, 자장면 값도 따라서 오른다. 서민들의 부담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정책을 입안할 때 비용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 지출을 늘리는 아이디어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만큼 부자들이 다른 쪽에서 더 큰 것을 챙기지 못하도록 관리할 수 있느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최소한의 지출로 삶의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제도를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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