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보다 콘텐츠 앞세운 전략, 독자 패러다임 구축…공룡 IT기업들도 맥 못춰

넷플릭스는 2분기에만 가입자를 520만명이나 늘렸다. 콘텐츠 최우선 전략과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모두 적중했다. 모바일 뿐 아니라 TV까지 겨냥한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 사진=셔터스톡

넷플릭스(NETFLIX)가 고삐 풀린 채 독주하고 있다. 가입자는 폭증세고 주가는 급등세다. 플랫폼보다 콘텐츠를 앞세운 넷플릭스 모델이 독자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덕이다. 덩치 큰 IT 기업들의 도전에 직면하리라던 전망도 무색해졌다.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bal+Localization)의 힘도 도드라진다. 후발주자의 추격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24일 관련업계와 외신을 종합하면 넷플릭스는 2분기에만 가입자를 520만명이나 늘렸다. 이중 미국 내 증가치가 10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 400만명 이상 인원이 미국 바깥 거주자라는 얘기다. 당초 제시됐던 전체 가입자 증가 전망치는 300만명대 초반이었다.

넷플릭스 같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자는 곧 실적이다. 넷플릭스의 2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뛰었다. 순이익은 60% 넘게 증가했다. 실적이 알려진 후 주가는 며칠 만에 15% 이상 급등했다. 고삐 풀렸다는 표현이 어색할 게 없다. 1997년 인터넷으로 DVD를 우편 대여해주던 서비스로 출발한 넷플릭스가 화려한 성년식을 치르고 있다.

‘볼게 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방송가와 콘텐츠업계 안팎에서 넷플릭스 국내 상륙 초기에 꺼내왔던 얘기다. 한 지상파 방송사 콘텐츠사업부 관계자는 지난해 2월 “넷플릭스가 국내서 성공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국 방송사의 킬러콘텐츠를 수급하지 못한 탓이 크다”며 “넷플릭스에는 한국 콘텐츠가 별로 없다”고 진단했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월 7일 국내에 상륙했다. 출시 한 달 만에 실패를 예견했던 셈이다.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관계자의 진단이 전통적 방송 산업의 문법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한국의 킬러콘텐츠를 수급해 가입자에게 내놓는 서비스가 아니다. 한국인을 유혹할 킬러콘텐츠를 만들어 가입자를 늘리는 서비스다.

다소 수정이 필요한 진단도 있다. 넷플릭스를 두고 국내 다수의 미디어산업 학자들은 플랫폼 우선 전략에 무게를 뒀었다. 플랫폼 사업 진흥을 위해 콘텐츠를 활용한다는 분석이다. 콘텐츠 경쟁력이 가입자 증가로 이어진 점은 이 진단이 유효함을 뜻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이 수준을 넘어 최고의 콘텐츠 생산을 사업의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기조연설자로 나와 “모바일 플랫폼이 콘텐츠보다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며 “넷플릭스는 모바일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모바일에 얽매이지 않고 최고의 콘텐츠를 어디서라도 팔릴 수 있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넷플릭스의 부사장급 인사가 가전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 참석해 삼성‧LG전자 등과의 협업사례를 발표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내 손 안의 스마트폰’에서 ‘55인치 이상 대형 TV’에서까지 콘텐츠를 팔겠다는 심산이다. ‘옥자’를 통해서는 극장 스크린까지 겨냥했다.

그간 글로벌 IT 업계 격언 중 하나는 기술 플랫폼이 콘텐츠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대체 가능하지만 기술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나온 생각이다. 넷플릭스는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를 연이어 내놓으며 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시즌 5가 나온 ‘하우스 오브 카드’는 가장 대표적인 ‘대체불가 드라마’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MWC에서 기조연설을 했다는 게 이 지진 같은 패러다임 변동을 그대로 상징한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넷플릭스보다 덩치 큰 IT 기업들이 강한 맞상대가 되리라던 진단도 무색해졌다. 넷플릭스 성공 이후 아마존과 애플, 구글, 페이스북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소식을 밝혔다. 애플은 최근 소니TV 출신 임원 2명의 영입소식을 알렸다. 전부터 애플은 TV업계의 프로듀서와 영화 스튜디오 관계자 등을 오랜 기간 접촉해왔다.

아마존은 지난해 12월 전세계 200개 이상 국가에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아마존은 2015년부터 영화제작에도 나섰다. 유튜브는 ‘유튜브 레드’라는 유료 서비스를 내놓고 가입자들에게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한다. 페이스북은 10~15분 형태의 오리지널 TV쇼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핵심 사업은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를 풍성하게 하는 데 콘텐츠를 활용하려 한다. 애플의 캐시카우는 어디까지나 아이폰이다. 아이튠즈가 있지만 이 역시 핵심은 소프트웨어지, 콘텐츠 자체가 아니다. 그나마 직접 비교가 가능한 건 아마존 프라임이다. 하지만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

미국 IT전문매체 긱와이어(Geekwire)가 5월 31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리드 헤이스팅스는 한 컨퍼런스에 나와 “넷플릭스는 스타벅스가 되려 하고 아마존은 월마트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절묘한 비유다. 즉 아마존이 종합상사라면 넷플릭스는 전문매장이다. 아마존이 푸드코트라면 넷플릭스는 찌개집이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는 영화, TV 쇼 등을 통해 어떻게 즐거움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초점 맞추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설사 라이벌들이 콘텐츠에 힘을 줘도 추격은 녹록치 않다. 2분기 넷플릭스가 모은 가입자의 80%가 미국 바깥에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하자. 지역별 전략이 한껏 힘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미드 센스8은 지난해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접한 콘텐츠였다. 이 작품은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쇼스키 남매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연은 배우 배두나다. 마동석, 이경영, 윤여정 등 다른 익숙한 얼굴도 볼 수 있다. 옥자가 국내서 만들어낸 후폭풍도 비슷한 맥락의 사례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도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 중이다.

넷플릭스는 이 전략을 세계 각지에서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심야식당: 도쿄스토리’를 내놨다. 콘텐츠로 ‘글로컬라이제이션’, 그러니까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셈이다. 애플이나 페이스북의 현금보유고가 차고 넘쳐나도 이런 모델을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는 “넷플릭스의 장점은 단순히 오리지널 콘텐츠 공급에 있지 않다. 자신들의 플랫폼을 진출시킨 지역 정서에 맞춰 투자할 수 있다는 게 성공의 핵심 동력”이라며 “오늘날 같은 초연결사회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로컬(local)에 몸을 두면서도 실시간으로 글로벌(global)과 연결된다. 넷플릭스는 이를 충족시켜 주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장 박사는 “이용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동시 공개된 미드를 시청하면서 한편으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도 접할 수 있다. 넷플릭스 안에서 글로벌과 로컬을 모두 향유하는 것이다. 시장 확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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