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영화 10분의 1 규모 스크린 수로 박스오피스 4위…상영‧배급시장에 끼칠 영향 주목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영화 '옥자'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배우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연,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다이엔 헨셜, 변희봉, 최우식(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뉴스1

94개로 판을 흔들었다. 글로벌 OTT(Over the Top)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옥자’가 첫날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국내 멀티플렉스 3사 개봉이 불발된 상황에서 거둔 성적이다. 옥자보다 앞선 영화들은 900개 안팎의 스크린을 확보한 채 10배 이상의 상영횟수를 발판 삼아 경기에 나섰으니 옥자와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기자가 판을 흔들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이 선전이 영화산업에 가져올 나비효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상영과 배급 모두 이 효과의 그물망 안에 있다. 상영시장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vs극장’이라는 구도가 생성됐다. 지난해부터 워너브러더스와 20세기폭스 등 ‘외자(外資)의 공습’이 현실화한 배급시장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다만 옥자의 국내배급을 NEW가 아닌 중소형 배급사가 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9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 작품 ‘옥자’의 첫날 관객수는 2만 3106명으로 집계됐다. 눈에 띄는 숫자는 아니다. 박스오피스 1위 ‘박열’이 개봉 첫날 20만 명을 불러 모은걸 감안하면 옥자가 흥행에 참패했다고 말해야 한다.

속을 뜯어보자. 옥자가 확보한 스크린은 겨우 94개다. 평단과 관객 사이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다. 주요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개봉이 불발된 탓이다. 국내시장서 이들 세 기업이 차지하는 매출액 점유율은 97%가 넘는다. 옥자를 보려면 단관극장이나 예술영화관을 찾아야 한다. 옥자의 시사회도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에 2만 명 이상 끌어모은 건 의미가 작지 않다. 옥자보다 박스오피스에서 앞선 세 작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스오피스 1위 박열이 확보한 스크린 수는 옥자보다 10배 이상 많은 995개다. 개봉 첫날에는 917개였다. 개봉 후 호평이 쏟아지며 스크린수를 소폭 늘렸다. 박열은 메가박스 계열인 플러스엠이 투자배급했다. 혹평이 빗발치고 있는 박스오피스 2위 ‘리얼’도 개봉 첫날 970개에 이어 둘째 날 918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리얼의 투자배급사는 CJ E&M이다.

박스오피스 3위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다. 이 영화는 개봉 첫날이던 지난 21일 무려 1739개의 스크린수를 확보했었다. 이후 4일 연속 17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 채 관객동원에 나섰다. 흥행추세가 완연하게 꺾인 29일에도 859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스크린수 차이에 따라 자연스레 상영할 수 있는 기회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29일 박열은 4495회 상영됐다. 리얼과 트랜스포머의 상영횟수는 각각 3805회, 3423회다. 같은 날 옥자는 전국에서 단 324회 상영됐을 뿐이다.

옥자보다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뒤진 ‘하루’와 ‘미이라’, ‘악녀’는 397개, 284개, 221개의 스크린으로 시장에 나섰다. 개봉 한 달도 넘은 ‘노무현입니다’도 143개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서 옥자가 4위에 오른 셈이다. 옥자가 판을 흔들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이런 선전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예매율의 추이가 이 추정에 무게감을 더한다. 옥자는 30일 오후 실시간 예매율 순위에서 5위에 올라 있다. 예매율은 11.6%다. 예매율 3위가 다음 주 개봉예정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인 걸 고려하면 개봉작 중에서는 4위다. 특히 리얼(16%), 트랜스포머(13.4%)와의 간극이 크지 않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옥자가 첫날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주말 성적이 관건이다.

자연스레 옥자의 선전이 국내 영화산업에 끼칠 영향으로 눈길이 쏠린다. 영화 비즈니스의 두 축인 상영업과 배급업 모두 이 영향의 그물망 안에 놓이게 됐다.

상영시장에서 단연 눈길 끄는 건 ‘스트리밍 서비스vs멀티플렉스’라는 구도의 형성이다. 그간 국내서는 없었던 구도다. 하지만 최근 한 달여 간 넷플릭스와 국내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상영을 둘러싼 갈등전선을 펼쳤다.

흥미롭게도 국내 여론은 이를 ‘외국 자본vs국내자본’의 구도로 보지 않았다. 되레 이를 계기로 멀티플렉스 3사의 독과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해당 작품이 봉준호 감독 영화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자리 잡은 멀티플렉스 비판여론 흐름에 절묘하게 올라타 수혜를 본 모양새가 됐다.

한국형 넷플릭스를 표방하는 왓챠(watcha)가 이 구도에 끼어든 점은 그래서 관심거리다. 왓챠는 옥자 개봉일이던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자체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옥자가 멀티플렉스 3사에서 정상개봉했다면 727만 관객을 동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리밍 서비스vs멀티플렉스의 구도에서 전자에 완연히 힘을 실어준 셈이다.

왓챠 역시 지난해 5월부터 월정액 VOD 스트리밍 앱 ‘왓챠플레이’를 출시해 서비스 중이다. 왓챠플레이의 국내 맞상대가 넷플릭스라는 점을 고려하면 흥미로운 움직임이다. 이를 두고 한 콘텐츠산업 전문가는 “왓챠가 멀리 보고 넷플릭스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달리 보면 ‘왓챠플레이는 빅데이터를 통해 영화취향까지 분석하고 큐레이팅할 수 있다’는 홍보전략도 섞여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배급시장에 미칠 여파도 있다. 국내 투자배급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낱말은 ‘4대 메이저’(CJ E&M, 쇼박스, NEW, 롯데엔터테인먼트)다. 이 상황서 지난해 할리우드 워너브러더스와 20세기폭스가 각각 영화 ‘밀정’과 ‘곡성’으로 한국시장에 안착했다. 해묵은 4강 구도에 균열이 나타났다는 해석이 잇달았다. 이 와중에 넷플릭스가 5000만 달러(약 571억원) 투자를 감행한 옥자까지 국내시장에 상륙했다. 일각에서 다시 한 번 메기효과를 기대하는 이유다.

다만 워너‧폭스 모델과는 다르게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넷플릭스 역시 기존 국내 시장질서에 맞춘 전략을 펼치려 했었기 때문이다. 옥자의 국내 배급사가 NEW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이미 투자까지 넷플릭스가 다 한 마당에 왜 굳이 NEW를 택했을까. 결국 멀티플렉스 3사 개봉을 노렸던 것”이라며 “만일 넷플릭스가 메이저가 아닌 중소형 배급사를 택했다면 시장생태계를 나아지게 만드는 데 좋은 효과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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