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흐름과 거꾸로 가는 한국…장기투자 여건 갖추도록 정치권 등 힘 모아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사진=서스틴베스트


# 2015년 5월 26일. 이날 옛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합병한다는 공시를 띄웠다. 삼성그룹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두 회사간 시너지가 필요하다는 명분이었다. 무난하게 끝날 것 같던 두 회사 합병은 한 의결권 자문사의 입장이 나오고 난 이후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의결권 자문사로 사회책임투자 전문가그룹인 서스틴베스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은 삼성물산의 일반주주 지분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25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서스틴베스트 본사를 찾아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를 만났다. 류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상황을 보면 쉬운 의사결정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한 자문사가 삼성이라는 국내 최대 경제권력에 정면으로 맞서기엔 부담이 없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투명해지고 있다는 큰 변화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실적과 같은 재무적인 요인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도덕성,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 지배구조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폭스바겐그룹의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 사태 등이 이슈가 되면서 비재무적인 요소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류 대표는 “일반기업들이 경영을 하다보면 재무적인 리스크만 있는 것만 아니라 비재무적 리스크도 생기게 된다. 환경 관련 사고가 터지거나 노사간에 심각한 분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직접적인 재무적인 리스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기업의 전체적인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며 “이로 인해 기업에 대한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ESG를 활용한 책임투자 관점에서는 아직 더 변해야할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투자는 단기 성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조차도 단기 성과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정부와 언론이 단기적인 성과를 평가 잣대로 들이미는 영향이 크다”며 “ESG를 활용한 사회책임투자가 착근 되려면 우선 공적 연기금 운용자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종금증권), SK증권, 현대증권 등을 거친 투자 전문가다. 2004년 영국 애슈리지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후 사회책임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했다. 류 대표는 2000년대 척박했던 국내 ESG 평가 분야에 씨앗을 심은 선구자적 인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ESG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다. 상장사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이 경영을 하다보면 재무적인 리스크만 있는 것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와 관련된 비재무적 리스크가 생긴다.

예컨데 기업들은 산업혁명 이후 별다른 규제없이 온실가스를 내뿜으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기업들도 돈을 들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배출권을 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환경적 리스크가 재무적 리스크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환경 부문에서는 어떤 기업이 배출관리, 온실가스 관리, 토양문제, 대기오염 등을 잘 관리하는지 본다.

사회적인 리스크라는 것은 노사문제, 갑질문제, 협력사와의 문제, 양성평등 문제, 일과 삶의 균형 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대주주가 자신들만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은 아닌 지, 소수주주, 기관주주 등의 이익을 잘 고려해서 경영을 하는 지 등을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서스틴베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

900개 기업의 ESG를 평가해서 어떤 리스크 요인이 있는 지, 이로 인해 해당 기업의 미래 기업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 지를 측정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를 운용하는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등에 컨설팅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해당 펀드들의 규모와 실제 수익률은 어느정도 되나.

시장에서 SRI펀드 규모는 7조5000억원 수준이다. 이중에서 6조원 정도는 국민연금이고 나머지 1조5000억원은 여타 연금, 공모펀드들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SRI를 2006년말부터 시작했다. 이들은 수익률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지난해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8개 유형 주식 투자 중에서 사회책임 투자형이 2006년부터 수익률이 두 번째로 좋았다는 것을 들었다.

ESG를 활용한 투자에 대해 개인이나 기관 인식이 아직 낮은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러한 투자가 확산하려면 우선 우리나라 투자문화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ESG를 활용한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증권사에서 14년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개인 투자자들은 단기 투기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는 장기적 투자 여건이 되는 국민연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국민연금에게는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치인들이나 감사기관, 심지어 언론까지 국민연금의 1년 수익률을 놓고 평가한다. 그리고는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자금을 운용하는 입장에선 압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국민연금이 책임투자팀을 만들고 SRI펀드를 만든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전문성 축적이 안되는 것 같다. 또 국민연금은 SRI 펀드 운용을 100%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다. 아웃소싱 한다고 하더라도 위탁운용하는 담당자가 SRI에 대한 이해와 철학, 투자관을 갖고 있어야한다.

법적이나 정책적으로 사회책임 투자를 강화하는 시도는 없었나.

2015년에 국민연금법을 개정했다. 두 가지 조항이 신설됐다. ‘국민연금이 채권과 주식에 투자할 때 ESG를 고려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다. 해야한다는 강제 조항은 아니다. 또 ESG를 고려한 투자를 할때에는 해당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는 공시조항이 생겼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런 법개정이 이뤄진 이후에 오히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더 퇴조한 거 같다. 국민연금 SRI 투자 규모도 2015년말 기준 6조8500억원이었는데 지난해말 기준 6조원으로 줄었다. 국민연금 위탁 운용사도 14개에서 9개로 줄었다. 양적으로보면 더 축소됐다. 법개정 취지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해외의 경우는 어떠한가.

해외 공적 연금 기관을 살펴보면 일본, 노르웨이, 한국, 네덜란드, 캐나다 순으로 규모가 크다. 일본을 제외하면 ESG를 통한 책임투자를 도입하고 있다. 엄격하거나 조금 느슨하거나의 차이는 있으나 ESG를 스크린하고 있다. 심지어 부동산 PF투자를 할 때에도 ESG스크린을 한다. 일부는 ESG를 아주 엄격하게 적용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

일본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 이를 일본 국민연금에 확산시키는 임무를 줬다. 이로 인해 지난해말 일본의 214개 기관들이 이를 도입하면서 책임투자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 기업의 경우 ESG 중에서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보나.

유럽 선진국은 환경리스크를 상당히 중요하게 본다. 우리나라는 지배구조 리스크가 중요하다고 본다. 지배구조 리스크는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 요소 중 하나다.

사외이사가 어떤 사람으로 구성돼 있느냐, 전문성이 있느냐, 독립성이 있느냐 평가해야한다. 더불어 이들이 얼마나 활동적으로 소수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느냐를 봐야한다. 이것을 내부통제 시스템이라 한다.

외부 통제도 강화돼야 한다. 특히 외부주주 중에서 기관 투자자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떨어지는데도 회사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 주주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 기관이 움직여서 관여해야한다. 이것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다.

ESG를 통한 기업평가가 국내에 많이 퍼지고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되면 어떻게 변할까.

IMF 이전과 이후 투자 문화가 바뀌었다. 기업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문화가 굉장히 약했다. 루머, 뉴스에 의존한 투자였다. 하지만 IMF 이후 투자자가 똑똑해졌다. 그때 재무구조가 안 좋은기업은 다 망했다. 이 때 투자자들이 교훈을 얻었다. 기업의 재무 지표를 보기 시작했다. 이에 기업들도 재무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ESG 투자 문화가 확산될수록 기업들이 좀더 길게보고 경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본다. 투자자들이 환경, 사회적 역할, 지배구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 기업들도 이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신경을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자체 경쟁력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도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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