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폭증·대외 불확실성 탓…경제회복세·미 금리인상 속도가 변수될 듯

13일 한국은행이 올해 세 번째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행 1.2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사진=뉴스1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연 1.25%로 동결했다. 가계 부채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는데다 이달 15일로 예정된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 등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기준 금리 동결 배경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기에 부담이 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이 앞으로도 통화정책 방향을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리를 인상하기엔 국내 경제 회복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고 금리를 인하하기에는 가계 부채 폭증, 미국과의 내외금리차 등이 발목을 잡는 까닭이다. 다만 한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미국 기준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한국은행 통화 정책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한국은행, 10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유지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13일 오전 올해 세 번째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행 1.2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지난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후 10개월 연속 동결한 것으로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 앞서 금융투자협회가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등 채권시장 전문가 2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99%가 동결을 예상한 바 있다.

이번 결정 배경에는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2017년 3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3월말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13조9000억원으로 한 달 새 2조9308억원 증가했다. 특히 제 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3월 한 달 동안 2조7184억원 늘어난 296조3719억원을 보이면서 정부의 가계 부채 관리 정책에도 증가세가 여전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움직이긴 쉽지 않았다. 기준 금리를 낮출 경우 가계 부채 규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기준 금리를 올리면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부채 상환 부담이 확대된다. 전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기획재정부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도 일관된 정책 유지, 취약계층에 대한 위험관리에 대한 목소리가 모아졌다. 이에 한국은행은 정책 공조 측면이라는 부분에서도 기준금리를 바꾸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대외 불확실성도 한국은행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미국 재무부는 종합무역법·교역촉진법에 따라 오는 15일 환율 보고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환율보고서는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정책에 대한 보고서로 환율조작국 지정 근거가 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 일본 다이와증권 등은 한국이 환율으로 조작국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하게 되면 자칫 의도적으로 통화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피하자는 측면에서도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유지 결정을 해석할 수 있다.

5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것도 통화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각 정당의 대선주자들이 정책 공략을 계속해서 꺼내들고 있다. 이 중 통화 정책 방향에 관한 내용도 나오면서 금통위 위원들 사이에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개진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5월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 발맞춤을 위해 통화정책 여력을 남겨놓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 운신의 폭 좁아진 한국은행···“올해 기준금리 움직이기 힘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은행이 앞으로도 기준금리를 움직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준금리 인하 요인과 인상 요인이 뒤섞인 까닭이다. 한국 경제가 내수와 수출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기준금리 인하 요인으로 분석된다. 반대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25bp(1bp=0.01%포인트) 수준까지 좁혀진 것은 기준금리 인상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가계 부채 문제는 통화정책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출 경우 가계 부채 폭증 문제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일각에선 가계부채문제를 한국은행의 과도한 기준금리 인하 탓이라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취약차주의 부실 규모를 키울 수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미선 부국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은 닫혀있는 상황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도 소멸되고 있다”며 “경기 회복 지연에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가계부채 등의 부담 요인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내 경제가 회복되는 모습이 나오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획대로 올린다면 한국은행은 내년 상반기에나 기준금리를 움직일 여지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지금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하기에는 더 어려워졌다. 나빴던 국내 경제 지표들이 개선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은 이미 지금 금리 정책이 완화적이라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과 한국의 금리차가 역전되기 전까지는 통화정책을 유지하는데 여유가 있다. 한국 경제는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이 필요한 상황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내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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