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노조 전면파업 시작…“구조조정 결사 반대” vs “인력조정 강행”

점입가경이다. 분사와 임금협상을 둔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이 전면파업으로 번졌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24시간 작업을 거부하는 전면 파업에 나서기는 22년 만이다. 현대중공업은 급감한 수주 탓에 경영난이 가중된 상태다. 노조 파업이 뼈아플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사내 갈등이 격화되는 이유로, 노·사 수장인 백형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과 강환구 사장의 ‘강골 성향’을 꼽는다.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이 표면적으로 ‘쩐의 전쟁’이지만, 사실상 노·사 양 수장 간의 협상 주도권을 둔 알력 다툼이라는 얘기다.

◇ “여론이 밥 먹여 주냐”…백형록 결국 ‘파업카드’

현대중공업 노조가 23일 전면파업에 돌입하며 울산 본사 조선소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노조는 이날 오전 8시부터 10여 개 지단별(공정 또는 사업부별)로 파업 집회를 각각 진행한 뒤 오전 10시30분부터는 노조사무실 앞에서 전체 조합원 파업 집회를 개최했다.

노조 측은 이날 전면 파업에 전체 조합원 1만5000명 가운데 10%인 1500여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파업 참가규모가 크지 않아 조업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가 파업참여를 독려하고 있고 24일과 27일 추가 집회에 예정돼 있다. 향후 파업 참가인원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전면파업 결정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분사반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회사가 빚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임금인상은 지나친 노조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 동구 민심도 불안에 휩싸였다.

23일 울산 동구 방어진 인근에서 조선소 협력업체를 운영 중인 김환명(52·익명)씨는 “(현대중공업 노사 중) 어느 편을 들일도 아니다. 결국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만은 노·사가 같지 않겠나”라며 “문제는 당장 일거리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자명한데, 노사가 매일 다투기만 하고 있다는 거다. 이러다 지역경제가 다 망가질까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전면파업은 지난해부터 예고돼 왔다. 노조 내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히는 백형록 지부장의 성향 탓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수장은 지난 2015년 10월 정병모 체제에서 백형록 지부장으로 재편됐다. 이후 백 지부장은 줄곧 “사측의 전향적 입장없이는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파업 가능성을 내비쳐왔다.

지난해 4월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난 백형록 지부장은 “악화된 경영난 책임을 미뤄두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면 큰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당장 고려사항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태도의 결과는 파업이라는 것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회사 존폐위기 상황에서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여론이 직원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 않냐. 조선 호황기 때 임금인상이나 복지혜택이 늘어났다면 우리 요구는 적어졌을 것”이라며 “(회사 경쟁력 제고를 위한) 새로운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임금인상이 필연적”이라고 강변했다.

◇ KEB 하나은행 압박에 강환구 “노조 임금삭감 거부하면 구조조정 강행”

백형록 지부장 엄포 앞에도 사측의 입장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수주난이 가중된 상황에서 분사를 통한 비용절감은 필연적이라는 게 사측 주장이다. 또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며 주장하고 있는 고용안정은 임금삭감이 전제가 됐을 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대표에 오른 강환구 사장은 백형록 지부장의 파업 카드 앞에 ‘인력조정 강행’이라는 초강수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 파업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결정이지만, 강 사장으로서는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돈줄을 쥐고 있는 KEB하나은행이 현대중공업에 ‘강력한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의 함영주 행장은 지난달 19일 계동 서울사무소를 방문해 현대중 수뇌부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함 행장은 최근 부분파업을 벌이는 등 사측과 갈등을 빚는 현대중공업의 노조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사장은 지난달 20일 담화문을 통해 “주채권은행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자구계획을 실천하라는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갔다”며 “협조방문이었지만, 사실상 일방적 통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고용보장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고통분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채권단의 인력조정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4월 1일을 목표로 추진 중인 사업분할에 대해서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사업분할이 이뤄지면 각 계열사는 자기만의 업종 특성을 살려 독자 경쟁력을 키우고, 재무구조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노·사 수장 간 불통(不通)이 그룹 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는 임단협이 타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강환구 사장 등 수뇌부가 직접 나와 담판을 벌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간사 간 타협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탓에 올해 금속노조에 가입한 노조가 ‘줄 파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대중공업 중간관리자, CEO, 노동자 모두 겉으로만 회사 사정을 걱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유가가 상승하면 다시 과거의 영화를 저절로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이런 (갈등상황이) 반복되면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 노동개혁, 기술개발 전략이 나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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