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칼럼
[사무사] 이재용 구속은 한국과 삼성에게 기회
  • 이철현 기자(lee@sisajournal-e.com)
  • 승인 2017.02.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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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주인 잃고 아무대나 짖어대는 개꼴"

한국 언론 다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하기에 나선 꼴이 가관이다. 국내총생산(GDP) 2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기업집단의 총수가 잡혀 들어갔으니 삼성은 망하게 생겼고 한국 경제는 위기에 처할 것처럼 써댄다. 한마디로 사실관계는 어긋나고 논리는 빈약하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주인 잃은 개가 갈팡질팡하며 아무대나 짖어대는 것처럼 보인다.

 

일간지나 경제지들은 1면 헤드라인, 3면 특집면, 칼럼, 사설 등 지면을 총동원해 ‘이재용 구속’을 연일 질타하고 있다. 삼성 출신 전문 경영인들이 한마디하면 대문짝만하게 제목으로 뽑아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한 특검을 겨냥해 비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삼성 출신 고위 인사들은 그동안 총수 일가에게 받은 은혜에 보은이라도 하겠다는 뜻인지 특검과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가 브랜드 향상에 기여한 것 없는 정치인들이 너무 쉽게 국격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은 물론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실관계부터 바로 잡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결정한 것은 특검과 법원이다. 느닷없이 정치인이 왜 등장하나. 국격을 떨어뜨린 주체도 이재용 부회장이다. 외국 언론이 ‘무당 자문역(shaman adviser)’라 칭하는 비선실세에 회삿돈 400억원 이상을 갖다바치고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가 이 부회장이다. 세계 2위 정보기술(IT) 업체이자 국내 최대 기업집단 총수가 횡령, 뇌물 수수, 위증 등 범죄에 연루된 것이 국격을 떨어뜨리는 짓 아닐까.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은 느닷없이 오너경영의 우수성을 강변한다. “도요타나 포드 등 해외 기업들은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오너 경영자가 다시 등장해 위기를 수습한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문제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 오너경영 체제를 부정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권력과 손잡고 불법을 저지른 오너에 대한 단죄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특검이 오너경영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했나. 형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현행법 위반 사건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가 잘못 알고 있나.

토요타 아키오나 헨리 포드 3세 등 오너 자손이 위기에 등장한 건 맞다고 치자. 그런데 토요타 아키오나 헨리 포드 3세가 뇌물,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적 있나. 또 토요타 아키오나 헨리 포드 3세는 오랜 기간 경영능력을 철저하게 검증 받은 뒤 이사회(거수기로 가득 찬 한국 이사회가 아니다) 의결을 거쳐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처럼 오너 아들이라는 후광만 업고 초고속 승진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이나 경영능력 입증이란 기준에서 토요타 아키오나 헨드 포드 3세와 견줄만한 경영인이 아닌 듯한데.  

삼성 계열사 사장은 한발 더 나아간다. “수갑을 찬 채 특검에 소환되는 이 부회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되면서 삼성은 브랜드 가치를 100억달러(약 11조원) 정도는 까먹었을 것이다.” 우선 100억달러라고 추산한 근거는 뭔지 모르겠지만 맞다고 치자.

그런데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관계자 판단은 다르다. 이 관계자는 남아프리공화국부터 브라질까지 전 세계를 돌면서 브랜드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이른바 골수 ‘삼성맨’이다. 그는 어쩌다 사석에서 필자와 만나면 “한해 수조원씩 브랜드 마케팅에 쏟아부으면 뭐해? 총수 일가가 헛짓 한번하면 헛수고가 된다”고 한탄했다. 그가 일컫는 헛짓은 경영권 편법 상속, 조세포탈, X파일, 성매매 추문 등 삼성 일가가 저지른 탈법 행위다.

진보 성향 일간지 보도나 사설을 언급하면 ‘빨갱이 매체’ 운운하며 색깔론을 내세울 듯해 비교적 중립적이라 판단되는 외국 매체 보도를 인용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0일과 21일 각각 사설에서 이재용 부회장 구속 사건에 대해 논평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일 ‘삼성 구속은 한국에게 기회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건희 회장이 재임시절 2차례 금융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고 나중에 대통령 사면을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비슷한 결과가 나오면 이는 한국 사회와 아시아 전역에 나쁜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며 “차기 대통령은 권력과 대기업간 유착관계를 면밀히 조사해 단절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과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지금의 소란에서 벗어나 전보다 더 강해지고 가치있는 사회 내지 집단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삼성이 불행 속에서 희망을 찾을 방법(Samsung's Silver Linings Playbook)'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지금 스캔들이 지배구조 개혁을 촉발한다면 삼성과 한국 경제에 이익"이라며 "더 나은 지배구조는 재벌 총수의 불처벌을 막고 한국 경제를 더 경쟁력있게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격은 모르겠으나 언론의 품격은 확실히 영국과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

이철현 기자
이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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