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서 극장·배급 겸업 규제론 비등…업계는 "글로벌 흐름 거스르는 행태" 강력 반발

지난 2015년 12월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앞에서 열린 CGVㆍ롯데시네마ㆍ메가박스 멀티플렉스3사 관련 WORST10 발표 및 시민참여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정치의 계절이 다가와서일까. 영화산업 프레임전쟁 열기가 다시 달궈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시작한 공세지만 야권 유력 정치인들이 끼어들자 판이 커졌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탓에 나타난 불공정 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에 이례적으로 업계가 적극 반박 모드로 전환했다.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가 내세우는 명분은 글로벌 기업에 맞선 국내 대기업 보호육성론이다. 수직계열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영화산업을 둘러싼 프레임전쟁의 구도가 ‘공정시장론vs보호육성론’으로 짜인 모양새다.

◇ 야권발 ‘공정시장론’


프레임전쟁에 도화선이 된 시점은 지난해 10월 31일이다. 이날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날 야권의 대표적 문화통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 전 대표의 개정안 골자는 간단하다. 이 법안의 핵심골자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배급 겸업 규제다. 쉽게 말해 CJ CGV와 CJ E&M, 롯데시네마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같은 그룹 내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영화의 5단계(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에 대기업 계열사가 모두 관여해 각 부문별 중소기업 성장이 막혀 있다는 얘기다.

도 의원의 법안도 비슷하다. 그는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영화배급업 겸영을 규제해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결국 안 전 대표나 도 의원 모두 산업 내 공정경쟁을 위한 선순환 생태계 구축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시민사회도 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15일 입장을 내고 “더 이상 CGV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시민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간 제작 부문은 대기업 계열사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었다. 공동제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만 어디까지나 ‘공동’에 방점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절반의 진실이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CJ E&M이 제작사 JK필름을 인수하는 등 제작 역량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수익배분 비율을 정할 때 돈을 많이 끌어오는 이가 힘이 강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배급사의 입김을 넌지시 암시했다. 그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개봉에 이르기까지 배급사와 극장, 제작사 간 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업계발 ‘글로벌 기업 육성론’

업계의 적극 반격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 건 최근 열린 한 대기업 멀티플렉스업체의 포럼 자리에서다.

8일 열린 CJ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서 기조발표를 맡은 서정 CGV 대표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흥행산업이다”며 “(스크린 배정 등에 대해서까지) 극장에 일방적인 불편함을 요구하는 건 시장논리‧경제논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서 대표는 “영비법 개정이 (과연) 국내 영화산업에 득이 될지 논의가 필요하다. 큰 그림을 봐야한다. 너무 작은 부분에 매달려 산업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도 말했다. 두 야당 유력 의원이 동시에 발의한 법안을 두고 ‘너무 작은 부분에 매달리고 있다’고 일갈한 셈이다.

이 같은 적극 반격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같은 포럼에 참석한 장용석 CGV 전략기획 부사장도 “영비법에 대해서 (가진 생각은) 사업하는데 너무 정치논리나 비(非)사업적 논리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업하는데 타당한가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그간 수세적인 대응에 비춰 이들의 발언을 상당히 이례적인 강경 모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앞선 영화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 이런 공격이 그전엔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번 경우는 유독 적극적으로 되받아치는 모습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야당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 야권 유력주자기도 한 안철수 전 대표는 개정안을 내놓고 대대적인 공청회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 유력 인사들도 참석했다.

유명 시인이기도 한 도종환 의원 역시 야권 내 대표적인 문화통이다. 그는 대선 여론조사 수위를 질주하는 문재인 전 대표와도 가깝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에는 문재인 캠프의 대변인을 지냈다. 결국 다가오는 정치권 빅뱅에 대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셈이다.

◇ 프레임 생산하는 업계, 한국경제 논쟁 닮은꼴


업계가 단순 해명에 그치지 않고 자체적인 프레임을 만들어 생산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해석을 지탱해주는 근거다. CGV는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의 1부의 주제를 글로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의 M&A로 정했었다.

여기서 장 부사장은 “한국도 저성장 시대 초입에 있다. 관람객이 늘지 않으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효율화를 추구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중국 기업 완다가 투자, 제작, 배급, 마케팅, 티켓예매 대행, 상영, 광고‧테마파크까지 모두 활용해 산업 내 영향력을 확장했다고도 설명했다. 

장 부사장은 이어 “글로벌 시장서 수직통합이 대세기 때문에 우리가 차포를 떼서 나갈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완다 등 자금력을 활용해 수직계열화에 몰두하는 글로벌 기업에 맞서기 위해 CGV 등 국내업체도 같은 방식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서 싸우기 위한 국내 대기업을 육성하자는 얘기다. 이러다보니 프레임의 축은 ‘공정시장론vs보호육성론’으로 짜이게 됐다.

이 같은 영화산업 프레임전쟁의 축은 마치 한국경제 개혁을 둘러싼 논쟁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경제학계에서는 대기업 순환출자를 해소해 중견‧중소기업도 경쟁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글로벌화한 경제전쟁 국면서 싸울 수 있는 대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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