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영업이익 1조원 넘겼지만 수주불황 심화…주채권은행 자구이행 독촉에 노조반발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흑자전환했지만 수주불황이 심화된 탓에 추가적인 자구계획을 실행할 전망이다. / 사진=박성의 기자

'매출액 39조3173억원, 영업이익 1조6419억원, 당기순이익 6823억원'

지난해 현대중공업 성적표다. 40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면서 남긴 돈만 1조원을 넘겼으니, 흠 잡기 어려운 실적이다. 숫자만 봐서는 현대중공업이 ‘수주 절벽’ 앞에 놓인 위기의 기업이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호성적을 거두고도 웃을 처지가 못 된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주채권은행 KEB하나은행이 추가적인 자구안 이행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즉, 수주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사람과 시설을 더 줄이라는 게 KEB하나은행 측 요구다.

이에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군산 조선소 일시 폐쇄 및 임직원 기본급 삭감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조가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며 반발, 현대중공업 자구안 이행이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 현대중공업 흑자전환했지만, KEB 하나은행 ‘불신 여전’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매출액 39조3173억원, 영업이익 1조6419억원, 당기순이익 6823억원을 기록하면서 2013년 이후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고 9일 발표했다.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긴 것은 2012년(2조55억원) 이후 처음이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부문에서 수익성이 양호한 선박의 건조 비중이 증가했고, 원가 절감과 공정 효율화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분사를 앞둔 건설장비, 전기전자 등의 부문에서 지속적인 원가 절감을 진행한 덕에 실적이 개선됐다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이 호성적을 냈지만 자축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조선경기가 불황 터널을 지나고 있는 탓에 현대중공업은 위기의 기업으로 불린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4년 창사 이래 최대치인 3조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보면서 대내외적 충격을 안긴 데 이어 이듬해에도 1조5000억대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임금 반납, 희망퇴직 등 자구계획을 진행했고 터보 기계, 그린에너지 분사 등 사업 재편을 진행했다. 보유주식과 부동산 등 비핵심자산도 매각하면서 2015년말 220%(연결기준)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75%로 개선됐다.

즉, ‘깎아낼 수 있는 것은 다 깎은’ 노력 덕에 흑자를 낸 것이다. 일감을 보여주는 수주실적은 엉망이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결과 현대중공업 지난해 총 수주 실적은 91억4600만 달러로, 재작년에 비해 37% 감소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에 지원금을 대고 있는 주채권은행 KEB하나은행은 “현대중공업 흑자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현대중공업에 자구안 이행을 촉구한 점도 지난해 현대중공업 실적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지난달 19일 현대중공업 계동사옥을 방문해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강환구 사장 등 경영진을 만나 “현대중공업이 현재까지 추진해온 경영개선 작업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장기화된 업황불황과 심각한 수주부진을 고려하면 안심하긴 이르다”고 지적한 바 있다.

10일 현대중공업 채권단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은 무의미하다. 집으로 따지면 집안 가전 가져다 팔고 쌀밥 대신 라면 먹어서 낸 흑자”라며 “가장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자화자찬 하기에 갈 길이 멀다. 자구안에 속도를 더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임금 삭감설은 ‘사실무근’…노조 파업재개 움직임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직원들의 ‘월급봉투’부터 손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현대중공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7800만원으로 집계됐다. 2000년대 조선업 호황기에 매년 임금이 오르며, 직원들이 적지 않은 월급을 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호황기를 지나 암흑기에 접어든 지금, 현대중공업 인건비가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기업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급여 20%를 삭감하는 안을 노조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내부에서는 사측이 다음주 중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 20%삭감안 동의서를 받을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지만, 취재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10일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임금삭감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고려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다음주부터 밀어붙인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소문”이라며 “노조와 대화를 통해 차분히 풀어갈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강환구 사장이 지난달 20일 회사 소식지에서 “노조가 회사의 임단협 수정 제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채권단의 인력 구조조정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밝힌 것을 근거로, 조만간 임금삭감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대화없이 자구안 이행을 밀어붙일 경우 파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또 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최근 울산지법에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월 73차 교섭 이후 노조가 상급노동단체인 금속노조 간부를 교섭대표로 내세우자 회사 측은 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며 법적인 협상 대상자가 불명확하다고 응하지 않고 있다.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조부위원장은 “사측이 20% 임금삭감을 임단협에서 주장해 왔기에, 최근 도는 소문을 간과하기 어렵다”며 “최근 흑자까지 냈다고 사측이 밝혔지만 노조와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회사를 믿을 수도 없다. 만약 일방적인 자구안을 밀어붙일 경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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